이명은 양욱(陽旭). 함경남도 풍산 출신. 1907년 8월 풍산에서 차도선(車道善)과 함께 거의(擧義)하여 차도선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일진회원 등 친일파를 처단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어 같은 해 11월 이후 홍범도(洪範圖)·차도선 두 사람의 휘하에서 활동하면서, 같은 달 16일 일진회 회원이며 친일주구인 북청군 안평면장 주도익(朱道翼)을 진목동에서 총살하였으며, 19일 역시 일진회 회원이던 안산면장 이쾌년(李夬年)과 그 아들을 처단하였다.
그리고 11월 22일부터 연3일간 후치령에서 일본군을 수차에 걸쳐 기습공격한 이후 1908년 2월까지 혜산진·북청·갑산·삼수 일대에서 활발한 항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08년 3월 일본군의 유인작전에 걸려 홍범도의병을 제외한 차도선 휘하에 있던 약 200명의 의병이 함께 붙잡힐 때 이에 항거하다가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