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낭공대사의 탑비.
개설
내용
비문의 앞면은 경명왕의 명으로 최인연(崔仁渷)이, 뒷면은 대사의 문하법손(門下法孫)인 석순백(釋純白)이 지었다. 입비 연대는 앞면 비문을 지은 뒤 세우지 못하다가 954년(고려 광종 5)에 순백의 후기(後記)와 함께 새겨 세웠다.
글씨는 자경(字徑) 2∼3㎝의 행서로 대사의 문인인 석단목(釋端目)이 김생(金生)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였다. 따라서 김생의 글씨를 연구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료이다. 당시 유행하던 구양순류(歐陽詢類)의 글씨를 따르지 않고, 진(晉)과 남조(南朝)의 필의를 모방하면서도 획에 태세곡직(太細曲直: 굵고 가늘며 굽은 것과 곧은 것)의 변화를 일으켜 가히 신품(神品)이라 할 만하다.
한편 비의 측면에는 조선 중종 4년(1509)에 영천군수 이항(李沆)이 태자사지로부터 영천의 자민루(字民樓)로 옮겨온 사실이 박눌(朴訥)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 『한국미술전집』11 서예(임창순 편, 동화출판공사, 1973)
- 『朝鮮金石攷』(葛城未治, 京城: 大阪屋號書店, 1935)
- 『朝鮮金石總覽』(京城 : 朝鮮總督府,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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