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사회 성원들은 성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명 대신 택호를 즐겨 사용하였다. 택호의 사용이 언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남자에 대한 성명호칭의 기피에도 연유가 있겠으나, 그보다도 오랫동안 처가살이를 하는 혼인풍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택호는 귀속을 나타내는 것인데, 남자가 장가가서 처가살이하는 것을 ‘남귀여가(男歸女家)’라고 표현하였고, 여자가 시집가서 시집에서 사는 것을 ‘여귀남가(女歸男家)’라고 표현하였듯이 귀속칭호의 잔존인 듯하기 때문이다.
택호로는 주로 그 집의 주부가 혼인하기 이전에 살던 동리 이름이 사용된다. 행정단위로서의 동리 이름보다는 자연촌락 이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부인이 ‘옥천’에서 시집왔다면 그 집을 ‘옥천집’이라고 하고, 그들 부부를 각각 ‘옥천댁 아저씨’ · ‘옥천댁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만일 이사를 가게 되면 전에 살던 곳의 지명이 택호가 되는 경우도 있다.
관직에 있었거나 또 있는 경우에는 관직명이 택호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였다면 그것이 택호가 되어 ‘진사댁’이라고 불린다. 때로는 유명하였던 조상의 시호가 택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시호나 관직명 택호는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것으로서 지체를 높여주는 것이므로 대대로 사용되는 것이 관례이다. 이와 같은 택호는 성명 대신 칭호로 사용되며, 부부 당사자뿐 아니라 그의 가족의 칭호이기도 하여 가명(家名)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혼인한 둘째아들 이하는 분가하여 택호를 가명으로 사용하나, 장자손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생존하여 동거하고 있는 한, 자신의 택호는 있되 단순히 성명 대신의 호칭에 그칠 뿐 그 집 호주의 택호가 가명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택호는 통혼(通婚)의 격을 상징하기도 한다. 택호가 동리 이름으로 사용될 경우 택호만으로 처의 성씨와 가문, 그 촌락의 사회적 위치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택호는 특정인의 사회적 지체와 통혼의 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사용도가 낮아지고 있고, 그 상징성도 희미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