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7월 일부 진주농업학교 1학년 학생들이 문예연구 등의 목적을 내걸고 비밀단체를 조직, 단원 상호간에 긴밀한 연락을 취하여오다가, 다음해 2월 진주농업학교학생 동맹휴학을 주도하였으며, 이 때 단원 조삼수(趙三壽)가 학생대표로 활약하였다.
맹휴와 관련, 62명의 학생이 퇴학과 정학을 당하였고, 조삼수 등 2명의 학생이 구속되었는데, 조삼수는 뒤에 징역 6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와 같이 학교와 경찰에 의하여 탄압을 받아 희생된 학생들 중에는 단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조직이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에 조직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T·K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매월 20일 정기집회를 가져 사회과학을 연구하였으며, 단원들이 철필로 쓴 원고를 모은 회지 『반역(反逆)』을 2호까지 발간하여 단원들끼리 회람하였다.
진주농업학교내의 다른 학생운동단체인 동모회(同侔會)와는 일정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그 뒤 진주경찰서에 조직이 노출되어 같은 해 11월부터 단원들이 붙잡혔는데 이 중 김경집(金慶執)·조용기(趙鏞起, 또는 趙鏞基)·박봉찬(朴鳳贊)·김상해(金祥海)·구연욱(具然煜)·하충현(河忠鉉) 등 6명은 구속 기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