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관계당국에 도굴사실이 신고됨으로써 알려져, 같은 해 여름 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발굴조사로 무덤의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구릉 사면에 있는 무덤은 구릉의 경사면을 ‘ㄴ’자형으로 파내고 평탄하게 정리한 암반층에 마련되었다. 길이 394㎝, 너비 202㎝, 깊이 103㎝ 규모의 장방형 수직 광 안에 길이 285㎝, 너비 118㎝, 높이 128㎝ 규모의 석곽(石槨)을 마련하고 그 안에 목관(木棺)을 안치하였다. 다시 그 위를 봉토 처리하여 지름 420㎝, 높이 150㎝의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완성하였다.
평면 장방형의 석곽 동벽과 서벽은 각각 너비가 좁은 긴 판석 1장을 광 바닥에 놓고 그 위에 넓고 긴 대형 판석을 올려 양 장벽을 마련하였다. 북벽은 정방형에 가까운 큰 판석을 가운데 두고 위 · 아래에는 같은 크기의 너비가 좁고 긴 판석을 사용해 구축하였다. 남벽은 정방형에 가까운 판석 1장으로 문돌을 만들어 마감하였다.
천장에는 방형의 큰 판석 2장과 장방형의 큰 자연석을 사용해 덮었다. 곽의 내부 바닥에는 한 변의 길이 35㎝, 두께 4.5㎝ 크기의 정방형 무문전(無文塼)을 전체적으로 깔아 처리하였다. 그러나 발굴조사 전 도굴로 인해 문돌 일부가 깨졌고, 무문전도 대부분 제거된 상태였다.
벽화는 네 벽에는 각각 관모 위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나타낸 인물상을, 천장의 중앙에는 북두칠성과 삼태성(三台星)을 그려놓았다. 이처럼 관모 위에 십이지신상을 그린 고려 벽화묘로는 수락암동1호분, 장단법당방고분 등이 있다.
인물상 배치상태를 보면, 동 · 서벽에는 입구에서 북쪽을 향해 각각 26㎝의 간격을 두고 일렬로 5인의 인물상을 그렸다. 북벽의 인물상과 가장 가까운 위치의 양벽에는 앉은 모습, 나머지는 모두 서있는 모습이다. 북벽과 남벽에는 각각 1명의 앉은 인물상을 그렸다.
그림은 돌벽면에 회칠없이 직접 음곽선으로 윤곽을 잡고 그 위에 묵선(墨線)으로 그렸다. 얼굴의 세부와 손에 쥔 홀(笏) 등은 직접 묵선으로, 얼굴의 코 · 입술 · 관모 등은 묵선으로 그린 다음 자연안료를 이용하여 붉은 채색을 하였다. 침수에 의해 벽화가 대부분 지워진 상태이나 북벽의 추정 주인공의 모습은 비교적 뚜렷하다.
묘의 좌우로는 석수가 배치되어 있으며 정면에는 장명등을 세웠다. 그 앞으로 단을 지어 낮아진 곳에 놓인 석상의 좌우에는 석비와 문인석이 마주보며 배치되어 있는데, 석상만은 최근에 조성된 것이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고 없었으나, 출토된 유물은 희령원보(熙寧元寶) · 개원통보(開元通寶) · 함평통보(咸平通寶) · 정화통보(政和通寶) 등 동전 다수와 수정구슬 · 토기편 · 자기편 등이 있다. 특히, 묘지석(墓誌石)이 파손된 채 수습되어 이 무덤의 축조연대가 고려 공민왕 때인 지정임진년(至正壬辰年) 즉, 1352년이고 주인공이 권준(權準)임이 밝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