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적 약 800㎢(약 2억 5,000만평)에 매장량이 약 3억톤에 이르러 광복 전에는 평남북부탄전·삼척탄전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무연탄탄전으로 알려졌다.
평양시의 사동(寺洞)·고방산(高坊山) 탄광이 교통이 편한 관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개발되었고, 이어 삼신(三神)·삼등(三登)·만달(晩達)·강서(江西) 등의 탄광이 개발되었다. 탄전의 지질은 평안계(平安系) 지층이 넓게 발달하고 있으며, 곳곳에 중생대 쥐라계인 대동계(大同系)도 노출되어 있다.
이들 지층은 오랜 기간에 걸쳐 퇴적작용을 계속하였으나 두 지층이 서로 평행하게 퇴적되어 있어서 탄맥의 끊어짐이 적어 채탄에 유리하다. 이 탄전은 조선 후기에 주민들이 일부 채굴하여 가정연료로 이용하여왔으나, 평남선(평양∼남포)·평양탄광선(평양∼승호리) 등의 철도가 부설된 뒤로 교통이 편하여짐에 따라 우리나라 최초의 대규모 탄전으로 개발되었다.
이곳의 무연탄은 고정탄소(固定炭素)가 80% 이상인 우수한 품질이어서 화력이 강하였으므로 대부분의 무연탄을 일본 도쿠야마(德山)의 해군연료창으로 보내어 일본함대용 연료탄으로 이용되었다. 이를 위하여 평양에는 일본의 해군연료창 광업부가 설치되었다.
일부는 연탄으로 만들어져 국내에서 소비하였다. 승호(勝湖)에서는 이곳 무연탄과 부근에서 채굴되는 석회석을 원료로 하여 카바이드·시멘트공업이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