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는 경기도 서남단 해안가에 위치한 시이다. 동쪽은 경기도 안성시, 서쪽은 황해, 남쪽은 충청남도 아산시·천안시, 북쪽은 경기도 오산시·용인시·화성시와 접한다. 1995년 5월 송탄시·평택시·평택군을 통합하여 도농 통합형 평택시가 되었다. 평택항이 환황해권의 거점항으로서 세계 3대 경제권으로 부상한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해 세계 물류와 국제 종합 무역의 중심 항만으로 성장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58.25㎢로, 이 중 농경지가 42.8%이다. 인구는 59만 8556명이다. 평택시청은 비전동에 있다.
경기도 서남단 해안가에 위치한 평택시는 동쪽은 경기도 안성시, 서쪽은 황해, 남쪽은 충청남도 아산시 · 천안시, 북쪽은 경기도 오산시 · 용인시 · 화성시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7°09'~127°46′, 북위 36°54′~37°08′이다. 1995년 5월 송탄시 · 평택시 · 평택군을 통합하여 도농 통합형 평택시가 되었다. 평택항이 환황해권의 거점항으로서 세계 3대 경제권으로 부상한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해 세계 물류와 국제 종합 무역의 중심 항만으로 성장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58.25㎢이며, 이 중 42.8%가 농경지로 경기도 지역에서 농경지 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 중 하나이다. 인구는 59만 8556명이다. 행정구역은 4개 읍[팽성읍 · 안중읍 · 포승읍 · 청북읍], 5개 면[고덕면 · 서탄면 · 오성면 · 진위면 · 현덕면], 16개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부 행정 단위로 23개 법정동, 411개 행정리, 83개 법정리가 있다. 평택시청은 비전동에 있다.
평택시는 일부 구릉지대를 제외하고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는 무봉산(舞鳳山: 209m)과 백운산(白雲山: 191m), 서쪽에는 덕지산(德智山: 138m), 봉화령(烽火嶺: 112m), 남부에는 고등산(高等山: 132.3m)과 마안산(馬安山: 113m), 중앙에 무성산(武城山: 112m), 오봉산(五峰山: 112m) 등 100~200m급의 낮은 구릉성 산지가 곳곳에 분포한다.
이들 산지 사이를 흐르는 황구지천(黃口池川)과 진위천(振威川) 등이 평택의 주요 하천인 안성천(安城川)에 유입된다. 안성천은 서남류하면서 직교천, 대방천과 합류하여 아산호로 흘러 들어간다. 북서쪽에는 발안천이 서남류하면서 하안평야를 형성하며 황해로 유입된다.
남양만과 아산만에 접해 있는 해안선은 간척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굴곡이 많고 복잡하였으나, 해안을 매립하고 산업단지 등이 들어서며 단조롭게 변하였다. 과거 이 지역은 홍수가 날 때마다 황해안으로부터 밀물이 몰려와 넓은 저습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1974년 남양방조제와 아산방조제가 축조된 이후에는 전 지역이 전천후 농경지로 변하였다.
지질은 대부분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위천 변에는 제4기 충적지가 발달하였다. 기반암의 침식으로 형성된 구릉지가 곳곳에 분포한다. 토양은 적황색토, 회색토, 충적토 등이 산재해 있다.
한반도 중서부의 황해안에 접한 데다 비교적 낮은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어 풍속이 강하게 나타난다. 계절풍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한랭 건조하며 여름에는 고온 다습하다. 1991~2020년 평년값 기준 연평균기온은 12.9℃이며, 1월 평균기온은 -2.0℃, 8월 평균기온은 26.2℃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144.3㎜로 나타난다.
고덕면 방축리와 오성면 양교리(梁橋里), 팽성읍 등지에서 간돌칼, 주먹도끼, 돌화살촉, 돌칼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팽성읍 추팔리 뒷산을 비롯하여 시내 무봉산, 부용산[43.6m], 내리산 등지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유습은 선사시대 이래의 전통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한시대에 팽성 지역은 신분활국(臣濆活國)에, 진위(振威) 지역은 목수국(牟水國)에 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한시대 후기에 마한(馬韓)의 영토가 한강 이남으로부터 충청도, 전라도까지 확장됨에 따라 이 지역은 직산, 성환과 함께 마한의 목지국(目支國)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에 들어와 북쪽은 고구려, 남쪽은 백제의 영역으로서 고구려의 남진 정책과 이에 대항한 백제와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아산현읍지(牙山縣邑誌)』에 따르면 아산 일대는 백제 아술현(牙述縣)에 비정되며, 팽성 일대 역시 백제 아술현에 속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5세기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394~491)의 남진 정책으로 고구려 영역에 편입되어 부산현(釜山縣), 부성현(釜城縣)으로 불렸고, 금산(金山)과 송촌활달(松村活達)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 이 지역에는 북쪽으로 연달부곡(淵達部曲)[지금의 진위면]이 있었고, 중앙에는 송장부곡(松莊部曲)[지금의 송탄동 장안마을 일대], 천장부곡(川場部曲)[지금의 서탄면 서부], 백랑부곡(白浪部曲)[지금의 팽성읍 서남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위 서부에는 용성현(龍城縣)[지금의 안중읍 용성리]과 광덕현(廣德縣)[지금의 현덕면 광덕]이 있었는데, 용성현은 고구려 때 차홀현(車忽縣)이라 불리던 곳이다.
옛 평택현은 삼국시대에 하팔현(河八縣)이라 불렸는데, 연혁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하팔현을 하입현(河入縣)[바다에서 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현]의 오기(誤記)로 보기도 한다.
그 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인 757년(경덕왕 16) 전국에 9주를 두고 군 · 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부산현은 진위현으로, 하팔현은 팽성현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진위현은 한때 수성군(水城郡)의 영현(領縣)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용성현이 차홀현으로 개칭되고 당은군(唐恩郡) [충청도]의 속현이 되었다. 이 지역은 본래 4세기 중반까지 백제의 영토에 속했으나 5세기에는 고구려에, 그리고 다시 6세기 중반에는 신라에 속할 만큼 인근 지역인 안성, 화성과 함께 삼국 정립기의 격전지로 전해 온다.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에 팽성현은 평택현으로 개칭되어 천안부에 속하였고, 진위현은 수주(水州)의 속현이 되었다. 청북면 지역은 용성현, 현덕면 덕목리 일대는 광덕현, 동삭리 일대는 영신현(永新縣)[또는 영풍현(永豊縣)]으로서 1018년(현종 9) 당시 수주의 속현이 되었다. 오도양계(五道兩界)가 성립되면서 1009년(목종 12)에 모두 양광도(楊廣道)[또는 충청도]에 소속시켰다. 1010년 거란이 침입하자 현종(顯宗: 992~1031)이 난을 피해 남으로 몽진했는데, 다음 해에 환궁할 때 병이 나자 이곳 진위의 가관(假館)에서 치료를 받고 귀경하였다.
1172년(명종 2) 진위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가 뒤에 속현에서 벗어나 현령관(縣令官)으로 승격되었다. 고종(高宗: 11921259) 때에는 진위현에서 이장대(李將大), 이당필(李唐必)이 정국병마사(靖國兵馬使)를 자칭하고 봉기했으나, 1218년(고종 5) 관군에게 토벌되어 평정되었다. 고려 후기에 예조총랑을 지냈던 공은(孔隱: 13481403)이, 조선 건국 후에 태종(太宗: 1367~1422)으로부터 여러 차례 새 왕조에 참여할 것을 요청받았으나 끝내 불응하고 지금의 현덕면에 은거하면서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 지역의 북쪽은 진위현, 서쪽은 수원군의 속현으로 있었다. 동서쪽은 그 일부가 양성현에, 동남쪽은 일부가 직산현에 속해 있었다. 중앙부는 영신현이 되었다가 폐현되었고, 이후 평택현과 진위현으로 분립되면서 행정구역상 복잡한 변동이 있었다.
조선 전기인 1398년(태조 7) 충청도에 속했던 진위현을 경기도에 이속시키면서 현령을 두었고 1413년(태종 13)에는 현감을 두었으나, 평택현은 충청도의 관할로 남아 있었다. 1424년(세종 6)에 진위현과 분리되었던 송장현이 1433년(세종 15)에 다시 진위현에 합병되었다. 평택의 중부에 수원부의 속현인 영신현을 두었던 것은 주1이라는 제도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
1505년(연산군 11) 경기도로 환원되었다가 중종(中宗: 14881544) 초에 다시 충청도에 편입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왜적을 섬멸하지 못했다는 책임으로 1596년(선조 29) 직산현에 이속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평택현으로 복구되었다.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낸 원균(元均: 15401597)이 진위 출신인 데다, 당시 왜군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을 의식하여 이름에 ‘송(松)’ 자가 있는 고을을 피하라는 지시로 송장면 지역에서는 전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소사동 일대에서 벌어진 소사전투는 임진왜란 때 명군과 왜군의 큰 싸움으로, 왜군이 주2를 이루면서 참패한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 휘하의 해생(解生), 나귀(玀貴), 양등산(楊登山) 등은 기병 4,000명을 인솔하고 말 탄 원숭이 부대를 소사천 다리 밑에 매복시켰다가 직산까지 북상한 왜군의 선봉 부대를 기습하여 큰 타격을 입혔다.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 당시 이 고장은 다시 청 · 일 양군의 격전지가 되었다. 곧 청군의 주력 부대와 이천, 서울 등지에서 남하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 소사벌 전투가 그것이다. 지금도 몰왜보(沒倭洑)라는 지명은 일본군이 잠복했던 곳에서 유래한 것이며, 청망평(淸亡坪)은 청군이 일본군에게 패배했던 들판으로 전해 오고 있다.
『진위읍지(振威邑誌)』에 따르면, 진위현은 1891년(고종 28) 당시 13개 면, 2,256호에 인구가 1만 400인가량인 것으로 나와 있다. 1895년 전국을 23부로 나누어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진위군과 평택군으로 바뀌어 공주부(公州府)에 속하게 되었다. 이듬해에 13도제로 다시 개편되면서 진위군은 4등군으로 경기도에, 평택군은 충청남도에 각각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충청남도의 평택군 전역과 수원군의 토진면 · 수북면 · 청룡면 · 감미면 · 율북면 · 포내면 · 현암면 · 승량면 · 안외면 · 광덕면 · 가사면 · 종덕면 · 오타면 · 숙성면 · 언북면 · 오정면 등 16개 면과 양성군 승량원면의 5개 리, 양성면의 4개 리, 원당면의 4개 리, 구룡면의 5개 리, 영통면의 1개 리, 용인군 서촌면의 1개 리, 직산군 삼서면의 2개 리를 진위군에 병합, 11면 128개 리로 개편하였다.
1926년 군청 소재지인 병남면을 평택면으로 개칭하고, 송장면과 탄현면을 합하여 송탄면을 신설하였다. 1938년 10월 진위군이 현재의 평택군으로 개칭되고, 평택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62년 6월 15일 송탄면에 신장출장소(新場出張所)가 설치되었고, 이듬해 송탄면이 읍으로 승격한 뒤, 1981년 7월 1일 송탄읍이 시로 승격하여 평택군에서 분리되었다. 1967년 부용면과 서면을 통합해 평택의 옛 이름을 따서 팽성면으로 개칭하였다. 1972년 9월 1일 팽성면에 안정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9년 팽성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9년 5월 1일 평택읍에 중부 · 동부 · 서부 · 북부의 4개 출장소를 두었고, 1983년 2월 15일에는 안성군 원곡면의 4개 리와 공도면의 소사리를 평택읍에, 용인군 남사면의 일부가 각각 진위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86년 1월 1일, 평택읍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구가 팽창하고 행정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시로 승격되었다.
1987년 서탄면 적봉리가 송탄시에 편입되고, 화성군 양감면 고념리가 청북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에는 4월 1일 안중출장소가 안중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4월 20일 진위면의 3개 리가 오산시로 편입되었으며, 같은 해 5월 10일 송탄시와 평택시, 평택군을 합하여 도농 통합형 평택시로 출범하였다.
1996년 4월 19일 동부동을 송탄동으로 변경하였고, 1997년 4월 26일 진위면 갈곳리를 갈곶리로, 청용동을 청룡동으로 개칭하였다. 같은 해 6월 17일 현덕면 인광5리가 인광5리, 인광6리로 분리 조정되었고, 1998년 10월 1일에는 송탄동과 도원동을 합하여 송탄동으로 변경하였다. 2002년 11월 5일 안중면이 읍으로 승격하고, 2006년 12월 29일 포승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2016년에는 청북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2019년 9월 비전2동에서 용이동을 분동하고, 2021년 10월 비전1동에서 동삭동을 분동하였다. 2021년 11월에 고덕면 여염리, 율포리, 좌교리, 해창리 일부를 고덕동으로 변경하였다.
2025년 5월 기준 평택시에는 30건의 국가유산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4건의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 2건, 사적 1건, 국가무형유산 1건 등]과 26건의 시도지정문화유산[유형문화유산 6건, 무형유산 4건, 기념물 9건, 등록문화유산 2건, 문화유산자료 5건 등]을 보유하고 있다.
선사시대 유물로는 고덕면 방축리, 오성면 양교리, 현덕면 도대리, 팽성읍 두정리 등에서 간돌칼, 민무늬토기, 석기, 화살촉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성지(城址)로는 포승읍 원정리의 ‘제5로 직봉 - 평택 괴태곶 봉수 유적(第5路 直烽 - 平澤 塊台串 烽燧 遺蹟)’[ 2023년 지정]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 팽성읍 안정리의 농성(農城)[1981년 지정]과 안중읍의 평택용성리성지(平澤龍城里城址)[ 2005년 지정], 덕우리의 평택자미산성지(平澤慈美山城址)[ 2005년 지정], 현덕면의 평택덕목리성지(平澤德睦里城地)[ 2005년 지정], 청북읍 옥길리의 평택무성산성지(平澤武城山城址)[ 2005년 지정]가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고덕면의 방축리 토성지와 진위면 견산리의 성산 토성지가 있다.
주요 불교 유산으로 현덕면 덕목리의 심복사(深福寺)에 있는 평택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平澤 深福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1972년 지정]과 진위면 동천리 무봉산 기슭의 만기사(萬奇寺)에 있는 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平澤 萬奇寺 鐵造如來坐像)[1972년 지정]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 불교 유물로 안중읍 용성리의 약사사(藥師寺)에 약사사부도(藥師寺浮屠) 등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팽성읍 객사리의 평택향교(平澤鄕校)와 진위면 봉남리의 진위향교대성전(振威鄕校大成殿)이 있다. 팽성읍 함정리 서원말에는 포의사(褒義祠)[양지서원(襄至書院)] 터가 있다. 이 서원은 1663년(현종 4)에 창건되어 홍익한(洪翼漢: 15861637), 오달제(吳達濟: 16091637), 윤집(尹集: 1606~1637)을 배향하였다. 평택향교와 진위향교대성전은 1983년 각각 경기도 문화재자료[지금의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외에 안중읍 학현리의 김효자정문, 청북읍 덕우리의 박효자비, 서소리의 오효자비, 진위면 가곡리의 이씨효열비, 현덕면 장수리의 김효자비, 죽백동의 허국효행정문 등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로 활동했던 원릉군 원균이 태어난 곳이 평택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인 1604년(선조 37) 원균의 후손에게 내린 원균 선무공신교서(元均 宣武功臣敎書)는 1992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경기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진위면 은산리에 있는 삼봉기념관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삼봉집목판(三峰集木版)[1986년 지정]이 있다. 1791년(정조 15) 경상감영에서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삼봉집(三峰集)』을 간행하고자 만든 것이다.
고건축 가운데 조선 전기에 처음 지어진 팽성읍객사(彭城邑客舍)[경기도 유형문화유산, 1989년 지정]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팽성읍 본정리의 홍학사비각(洪學士碑閣)[1983년 지정]은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고덕면 두릉리의 안재홍생가(安在鴻生家)[1992년 지정]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진위면 은산리의 정도전사당(鄭道傳祠堂), 서탄면 금암리의 한온충신사당(韓薀忠臣祠堂), 도곡동의 수성군 최유림사당, 이충동의 조광조(趙光祖: 1482~1519)와 오달제의 유허비를 보존한 충의각(忠義閣), 청북읍 고잔리의 신숙주 영정 및 감실주독 등이 있다.
역사적 인물의 묘소로 도일동의 원균장군묘(元均將軍墓)[1980년 지정]와 포승읍 희곡리의 이대원장군묘및신도비(李大源將君墓및神道碑)[1980년 지정]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 팽성읍 본정리의 홍익한 묘와 포승읍 원정리의 류처사 묘 등도 남아 있다.
기념비로는 조선 후기 대동법 실시에 앞장선 김육(金堉: 1580~1658)과 관련된 소사동의 대동법시행기념비(大同法施行記念碑)[경기도 유형문화유산, 1973년 지정]와 비석동의 현충탑, 비전동의 반공탑, 용이동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기념비 등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평택농악(平澤農樂)[1985년 지정]과 남사당놀이(男寺黨놀이)[일명 꼭두각시놀음, 1964년 지정]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서각장[2004년 지정]은 경기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에 수덕사, 방한사 등의 사찰, 오달제유지, 병남단오행사, 소사벌백중놀이, 유상순효자정문 등의 문화유산과 도일동의 엄나무 · 느티나무 · 향나무 · 물푸레나무 · 모과나무 · 팽나무, 오좌동의 은행나무 · 향나무, 장당동의 엄나무, 모곡동의 향나무 등 여러 수종의 거수 노목(巨樹 老木)들을 평택시에서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송탄동 지역은 예로부터 약수로도 유명하다. 팔룡산(八龍山: 138m) 줄기에서 1,000년 전부터 솟아나기 시작했다는 옻우물이 있으며, 불악산(佛岳山: 149.4m)[부락산] 자락에는 용호정과 장군정, 그리고 왕이 옥관자를 하사했다고 전해지는 옥관자정이 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조선 전기 팽성읍 객사리에 건립된 평택향교와 진위면 봉남리에 건립된 진위향교(振威鄕校)가 있다. 이들 향교는 15세 이상의 이 고장 생도들에게 학문 연구와 인격 수양의 배움터가 되어 주었다.
서원과 사당으로는 1661년(현종 2) 홍익한, 오달제, 윤집, 우남양(禹南陽)의 충절과 유덕을 기려 이 고장 유림이 건립한 포의사가 있다. 포의사는 1704년(숙종 30) 사액되어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으로 헐릴 때까지 유생들의 교육과 함께 배향된 선유(先儒)들에 대한 제향을 행하였다.
1900년대 이후 평택에는 진흥의숙(進興義塾), 동명의숙(東明義塾), 평택서당 등이 설립되었고, 죽림(竹林), 숙성리(宿城里), 지제리(芝制里), 양교리, 신대리(新垈里) 등에 서당이 설치되어 후진 양성에 이바지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0년(광무 4) 진위보통학교가 설립된 것이 최초이다. 1904년에는 강난수(姜蘭秀)가 팽성읍 남산리의 자기 집 사랑방에 평택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1913년에는 지금의 성동초등학교가 문을 열였고, 이후 지금의 죽백초등학교, 1922년 안중 · 서정 등의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설립에 이어, 1930년에는 1면 1교의 교육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송탄동 지역에는 1936년 최기봉(崔基鳳)이 사재를 희사하여 가재리에 교실을 짓고 직접 학생을 가르쳤는데, 해방 후 지금의 서정초등학교 분교가 되었다가 1949년 송탄초등학교로 발전하였다. 1937년 지산리에 강습소가 설립되어 해방 전까지 이 마을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1945년 해방 후 이 고장에는 초 · 중 · 고등학교가 활발히 건립되어 각급 학교 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2024년 4월 1일 기준 평택시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65개, 중학교 28개, 고등학교 21개가 있으며, 대학교로는 국제대학교와 한경국립대학교 평택캠퍼스, 평택대학교가 있다.
문화시설로 대표적인 곳은 평택문화원이다. 1972년에 개원한 평택군문화원과 1990년 5월에 개원한 평택시문화원이 통합한 것으로, 향토지 발간은 물론 탄현문화제와 소사벌단오제 등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면서 향토 문화의 계승 ·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문화단체로는 1983년 한국미술협회 평택지부, 1989년에는 문인 · 음악 · 국악 · 연예협회 평택지부가 각각 창립되었다. 이와 함께 예술단체 연합체를 이루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평택지회가 설립되어 평택 지역의 문화 · 예술 발전에 공헌하게 되었다. 이 고장의 문예회관으로는 남부[평택], 북부[송탄], 서부[안중] 등 세 곳에 공연장 · 전시관 · 세미나 시설을 갖춘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도서관으로는 서정동의 경기도교육청평택도서관, 비전동의 평택시립비전도서관, 팽성읍의 평택시립팽성도서관 등이 있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백중놀이가 있다. 백중놀이는 경기도 이남 지방에서 성행하던 놀이로 그 기원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까지는 주로 승려들이 100가지 종자[百種]를 갖추어 부처님에게 재를 올리는 행사였으나, 그 뒤 일반 가정에서 조상의 사당에 새로 난 음식을 올리는 천신(薦新)을 하고 춤과 노래로 하루를 즐기는 놀이로 변하였다.
백중놀이는 음력 7월 15일부터 며칠 동안 계속되는데, 이때 농악놀이, 씨름, 그네뛰기, 줄다리기, 난장 등이 아울러 벌어진다. 남사당패의 놀이가 곁들여지기도 하여 인근 각지에서 구경 오는 사람들도 많아 성황을 이루었다. 이곳의 백중놀이는 1945년 이전까지 성대히 거행되다가 한때 전승이 중단되었으나, 최근 평택문화원이 주관하여 재연되었다.
동제(洞祭)로는 유래가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팽성읍 추팔리의 산신제가 유명하다. 약 500년 전부터 거행되었다는 이 산신제는 매년 음력 2월 혹은 3월 중에 말날[午日]을 택하여 밤 9시[戌時]경에 뒷산에 있는 당집에서 거행한다. 그러나 동네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5월까지 연기되기도 한다. 제일이 결정되면 사흘간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등 부정한 일이 없도록 엄격한 금기가 지켜진다.
제물로는 통돼지 한 마리를 바치며 제를 지내는 동안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롯하여 각자의 소원을 빈다. 산신제가 끝나면 주민들은 농악을 치며 음식을 나누어 먹는 등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한다. 이곳 산신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중단된 일이 없다고 한다. 이 밖에도 팽성읍 내리의 산신제 등이 매년 관례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
이 고장에는 「영웅바위전설」 · 「심복사전설」 · 「자미산성지전설」 등의 지명전설이 다수 전해 내려온다. 영웅바위는 포승읍 만호리에서 서쪽으로 약 3㎞ 지점의 바다에 솟아 있는 높이 15m, 둘레 60m의 바위인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아산만으로 침입하자 이 바위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수군을 지휘하는 장군의 모습으로 변하였고 주변의 작은 바위들은 군졸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이곳에 당도한 왜군들은 자신을 향하여 돌진하는 듯한 바위의 형상에 속아 대경실색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그 뒤 사람들은 이 바위의 공을 기리기 위해 영웅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심복사는 현덕면 덕목리에 있는 절로 어부와 석불에 얽힌 유래담이 전해 온다. 언젠가 아산만에서 조업을 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조그만 석불이 걸려 올라왔다. 어부는 그 석불을 무심코 바다에 던져 버렸지만 석불은 매번 그물에 걸려 다시 올라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어부는 석불을 싣고 집에 돌아왔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낮에 건져 낸 석불이 나타나더니, 자신이 안치되어야 할 자리를 일러 주고 그곳에 절을 짓되 바닷가에서 파선된 배 조각을 거두어 쓰고 근방에 돌아다니는 검은 소 세 마리를 끌어다 일을 시키라고 하였다. 어부는 석불이 계시한 대로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이 바로 심복사라는 것이다.
또한 자미산(慈美山: 36m)의 성터에는 오누이 힘내기 유형의 유래담이 전해 온다. 옛날 힘이 장사인 오누이가 서로 힘겨루기 시합을 했는데, 오빠는 세 척이나 되는 나막신을 신고 한양까지 갔다 오고 누이는 그동안 앞치마로 돌을 날라다 성을 쌓는 시합이었다. 그러나 아들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의 간섭으로 누이가 시합에 져서 죽고 말았다. 그때 누이가 성을 쌓았던 자리가 바로 성터이며, 오빠는 병자호란 당시 활동한 임경업(林慶業: 1594~1646) 장군이라 한다.
이 밖에도 가을에 단풍 드는 모습으로 다음 해 농사를 점칠 수 있다는 진위면 동천리의 「은행나무전설」, 자식이 없던 노파가 백일기도 끝에 옥동자를 얻었다는 포승읍 원정리의 「느티나무전설」 등이 전한다.
이 고장에 구비 전승되는 민요는 노동요와 의식요, 애정요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동요가 많고 노동요 중에서는 논매기소리와 모내기소리가 대부분이며 밭 노래는 거의 없다. 그 까닭은 이 지방이 평야가 넓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의식요는 만가가 많이 전하고 지경 소리는 일부가 전할 뿐이다. 특히 이 지방을 대표하는 소리로는 노동요 중 「얼카뎅이야」[논매기소리] · 「방개타령」[논매기소리] · 「농부가」[모내기소리] · 「소몰이소리」 · 「파랑새」[새몰이], 신앙요인 「고사반」, 여요인 「시집살이요」, 애정요인 「정요(情謠)」와 「상사요」 등을 들 수 있을 정도로 전래되는 민요가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긴방개타령」은 “에기야에헤이 / 헤~이야 방개 홍개야 논다”가 반복되는데 가락과 가사 모두 단조로우나 가락이 힘차면서 길고 높게 뻗고 매우 구성지다. 그리고 「얼카뎅이야」는 “이논배미를 / 얼카뎅이야 [후렴] / 얼른매고 / [후렴 생략] / 장구배미로 / 넘어갈까 / 장구배미를 / 얼른 논을 매고 / …”와 같이 얼른 매고 쉬자는 내용의 단순한 가사에 ‘얼카뎅이야’라는 후렴이 사이사이 힘차게 불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애벌논을 맬 때 호미로 흙덩어리를 일구며 힘을 돋우는 소리를 후렴화한 것으로 가락은 단조로우나 힘차고 빠르다.
이 외에 특색 있는 민요로 「파랑새요」가 있다. 가사는 “우여 · [후렴] / 금제만경 넓은 들에 오곡백곡 풍성하니 / 일진춘풍 일때마다 금물결이 출렁출렁 / 전주고목 녹두새야 아반아래 납작새야 / 우리논에 앉지말고 십리백리 날아가라 / 우여 · / …”와 같다. ‘우여 · ’는 새를 쫓는 후렴이고 가사는 새가 벼에 앉지 말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4음 4음보가 정연한 문학성이 높은 정형시이다.
「고사반」은 주인댁의 평안과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장편의 서사적 음영 민요로 무격 신앙요의 백미라 할 만한 작품이다. 이 밖에 여요인 「상사요」와 「정요」도 순수한 감정의 낭만적 표현 기교가 뛰어난 음영 민요들이다.
전체 면적 중 42.8%에 해당하는 토지가 농경지로 경기도에서 농경지 면적이 가장 많은 지역의 하나이다. 임야는 16.2%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은 14만 7982㎢, 밭은 3만 7249㎢이다. 주요 농작물은 쌀, 두류, 서류 이외에 밭작물로 배추, 무, 고추, 파 등이 생산된다. 최근 주곡의 경지면적은 계속 감소하고 있으나 과실류, 목축, 원예 등의 생산 면적은 늘고 있다. 주요 임산물은 밤, 대추, 도토리, 표고버섯 등이다. 또한 해안가에 위치하여 민어, 송어, 꽃게, 망등어, 낙지 등이 어획되고 있다.
산업별 취업자 수를 보면, 총 32만 9600명 가운데 농가인구는 1만 9019명이다. 제조업 종사자는 9만 4300명으로, 이는 전체 취업자의 28.6%에 해당한다. 광산물로 고령토 등이 생산된다. 주요 제조업은 식료품공업, 조립금속업, 비금속공업, 종이인쇄공업이 발달하였다. 상업 시설로 팽성 등지에 정기시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쇠퇴했으며, 그 대신 상설 시장이 발달하고 있다.
고속도로, 국도 등이 동서남북으로 지나고 있어 도로교통이 발달해 있다. 도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시의 동쪽에서 남북 방향으로 지나며 서해안고속도로가 시의 서쪽에서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2008년 이후 평택제천고속도로 및 평택화성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서해안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로 연결된다. 국도 1호선이 시의 동북부를 남북 방향으로 경유하고 있다. 2016년에는 수서와 평택을 잇는 수서평택고속선이 개통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국도 38호선이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국도 45호선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지나며, 국도 39호선이 서쪽 안중읍을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철도는 경부선이 국도 1호선과 나란히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특히 서울특별시에서 충청남도 천안시까지 운행하는 수도권 전철의 수원–천안 구간이 복복선(複複線) 전철[총 4개 선로]로 건설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관광과 관련하여 평택항은 환황해권 중심항으로 세계 제3대 경제권으로 급부상한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해 세계 물류 및 국제 종합 무역의 중심 항만으로 발전하고 있다. 2003년부터 중국을 연결하는 국제카페리가 운행을 시작했으며, 현재 여러 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수도권 전철은 2005년 1월에 수원에서 평택을 거쳐 천안까지 연장되면서 서울특별시에서의 접근성이 크게 좋아져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
또한 2002년 평택제천고속도로가 완공되어 접근성이 뛰어난 관광 · 레저 지역으로 성장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 공군이 주둔하고 있는 송탄 지역을 1997년 5월 30일 관광특구로 지정해 다른 지역보다 관광산업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K-6[캠프 험프리스], K-55[오산 공군기지] 등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특수성을 최대한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의 주요한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평택8경으로는 평택항과 서해대교, 소풍정원[고덕면 궁리], 배다리생태공원, 평택호[한국소리터, 한국근현대음악관, 평택호예술관, 모래톱공원], 평택시농업생태원[유채꽃축제], 오성강변, 진위천 유원지, 그리고 원평나루 갈대숲이 있다. 대표적인 체험 관광지로는 체험 예술문화 공간인 웃다리문화촌[서탄면 금각리]과 도시민에게 농촌의 체험 공간과 휴양 공간을 제공하는 초록미소마을, 바람새마을, 밝은세상마을 등의 농촌 체험 마을 등이 있다.
특히 시에서는 평화 투어, 노을 투어, 생태 투어, 버거 투어 등 테마별 여행지에 관한 관광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평택문화원은 주요 관광지와 문화유적, 체험 시설, 지역 축제를 연계한 코스를 구성하여 시민과 관광객이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평택 시티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평택시의 남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6.53㎢이고, 인구는 2만 7548명이다. 팽성읍 행정복지센터가 객사리(客舍里)에 있다.
본래 충청남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충청남도의 여러 지역을 부용면(芙蓉面) 12개 리와 서면(西面) 13개 리로 편제하고 경기도 진위군(振威郡)의 관할로 두었다. 1938년 부용면과 서면을 합하여 평택군 팽성면으로 하였다. 1979년에 읍으로 승격하였다. 1992년 서부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95년 5월 10일 송탄시와 평택시, 평택군을 통합한 도농 복합형 평택시가 출범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평택시 팽성읍으로 편제되었다.
객사리, 남산리(南山里), 추팔리(秋八里), 노와리(老瓦里), 평궁리(坪宮里), 신궁리(新宮里), 두리(頭里), 신호리(新虎里), 근내리(近乃里), 석봉리(石峰里), 원정리(院井里), 도두리(棹頭里), 함정리(咸井里), 신대리(新垈里), 본정리(本井里), 노성리(老成里), 두정리(斗井里), 노양리(老陽里), 대사리(大沙里), 송화리(松花里), 석근리(石斤里), 안정리(安亭里), 내리(內里), 동창리(東倉里), 대추리(大秋里) 등 25개 법정리가 있다.
지질은 대부분이 대보화강암(大寶花崗岩)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에서 북동부 방향으로 솟아 있는 부용산 등 대부분이 해발 50m 이하의 평탄한 지형을 보인다. 북동부의 안성천이 읍의 경계를 형성하고 읍의 북부에서 진위천과 합류하면서 굽이굽이 물줄기가 이어져 황해로 흘러든다. 서남부에는 둔포천(屯浦川)이 흐르면서 주변 지대에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아산방조제가 축조된 이후에는 진위천 유역의 평야가 바닷물의 조수 피해로부터 벗어나 농업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농작물로는 쌀과 콩이 주로 생산되며, 한우와 젖소, 돼지, 닭, 산양, 사슴 등이 사육된다. 특히 한우, 돼지, 닭은 사육 두수가 시 전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읍내에 정기시장이 1곳 위치하며, 서해안에 인접한 지리적인 조건으로 수산물 어획량이 시 전체에서 제일 많을 정도로 어업 분야도 발달해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업종의 제조업 생산 시설이 들어서고 있는데, 추팔리와 남산리 일원에 조성된 추팔일반산업단지에는 섬유 · 음식료품 · 목재 관련 공업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교통망으로는 경부고속철도와 국도 45호선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국도 38호선과 함께 지방도 313호선, 지방도 315호선이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산으로 객사리에 팽성읍객사, 평택향교, 자비사(慈悲寺)가 있고, 안정리에 농성, 본정리에 홍학사비각이 있다. 대추리에는 단일 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가 자리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 신청사가 있다. 공원으로는 팽성레포츠공원, 내리문화공원 등이 있다.
평택시의 중서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8.47㎢이고, 인구는 4만 3321명이다. 안중읍 행정복지센터가 안중리(安仲里)에 있다.
조선시대 이래 충청남도 직산군에 속하였으나, 1895년(고종 32)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 수원군에 편입되었다. 이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경기도 진위군의 여러 면에 분할되었고, 1938년에는 평택군 관할로 이속되어 오성면, 청북면, 현덕면, 포승읍 일대에 속하였다. 이후 1987년 청북면에 설치된 안중출장소가 1989년 안중면으로 승격하였는데, 당시 오성면의 5개 리, 청북면의 2개 리, 현덕면의 2개 리 일부, 포승면의 1개 리 일부를 합해 모두 10개 리로 편제되었다.
동시에 포승면 석정리(石井里) 일부를 성해리(城海里)로, 현덕면 화양리(華陽里) 일부를 현화리(玄華里)로, 현덕면 인광리(仁光里) 일부를 송담리(松潭里)로 개칭하여 3개 리를 신설하였다. ‘안중’이란 면 명칭은 품질 좋은 쌀이 많이 나며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1995년 5월 10일 송탄시와 평택시, 평택군을 합하여 도농 통합형 평택시로 출범하면서 평택시 안중읍으로 편제되었다. 2002년 11월 5일 시 조례 제585호에 따라 읍으로 승격하였다. 안중리, 학현리(鶴峴里), 금곡리(金谷里), 대반리(大盤里), 삼정리(三井里), 덕우리(德佑里), 용성리(龍城里), 성해리, 송담리, 현화리 등 10개 법정리가 있다.
기반암은 대부분 선캄브리아기의 편암(片岩)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파산(琵琶山: 56m), 자미산, 통봉(桶峰: 32m) 등 해발 100m가 안 되는 낮은 산지가 많이 분포하나 대부분 완만한 저평지에 가깝다. 평택호로 유입되는 대반천(大盤川)이 남부와 중부를 관류하면서 넓은 충적평야를 만들었다.
전체 면적 중 농경지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하며, 관개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밭농사보다는 미곡 중심의 논농사가 우세한 지역이다. 돼지, 닭, 산양 등을 사육하는 축산농가가 산재하며 양봉도 이루어진다. 식품 분야 등의 많은 제조업체 생산 시설이 산재해 있다. 최근에는 현화리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어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교통은 국도 38호선이 면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국도 39호선이 남북을 종단하면서 두 개의 국도가 면 중앙에서 교차한다. 이 외에 지방도 313호선 등이 지나가며 인근 지역과의 교류가 증가하였다. 팽택시의 중 · 서부 일대에서는 상업 · 위락 · 교육 · 의료 활동의 중심지로 기능한다.
문화유산으로 용성리에 약사사와 약사사부도, 덕우리에 평택자미산성지, 안중리에 청주한씨 열녀정문(淸州韓氏 烈女旌門)과 안중창(安仲倉)이 있다. 안중창은 조선시대 곡물 집산지의 기능을 담당했던 곳이다. 최근 들어 경기도교육청국제교육원, 안중레포츠공원, 송담근린공원, 갈릴리캠핑장 농촌체험, 사계절 등이 들어섰다.
평택시의 서단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0.46㎢이고, 인구는 2만 2758명이다. 포승읍 행정복지센터가 방림리(芳林里)에 있다
본래 경기도 수원군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원군 포내면(浦內面)의 대부분과 승양면(升良面), 안외면(安外面), 현암면(玄巖面)의 일부를 통합하여 9개 리로 편제하고 경기도 진위군 포승면이라 하였는데, 포내면의 ‘포’ 자와 승양면의 ‘승’ 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1938년 평택군에 이속되었고, 1989년 안중면에 석정리(石井里)의 일부를 이관하여 현재의 행정구역을 갖추었다.
1995년 5월 10일 송탄시, 평택시, 평택군이 통합되어 도농 통합형 평택시가 출범하면서 평택시 포승면으로 편제되었다. 2006년 12월에 포승읍으로 승격하였다. 내기리(內基里), 도곡리(道谷里), 원정리(遠井里), 만호리, 희곡리(希谷里), 신영리(新榮里), 방림리, 석정리, 홍원리(洪原里) 등 9개 법정리가 있다.
기반암은 대부분 선캄브리아기의 편암이다. 북서부의 봉화령이 면에서 제일 높은 산지이고, 중앙 남부에 승배산(僧拜山: 51m), 대덕산(大德山: 58m) 등 잔구형 산지가 분포한다. 북쪽으로 남양호, 서쪽 및 남쪽으로 아산만과 접하며, 방림천(芳林川)이 읍 전체를 관류한다. 이들 유역에 충적층과 해안평야가 자리 잡고 있다.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훨씬 우세한 미곡 중심의 농업지대이다. 주요 농산물로 보리 · 콩 등의 맥류와 두류 생산량이 많고, 고추 · 마늘 등의 채소류 경작도 활발하다. 한우와 젖소, 돼지, 닭을 사육하는 축산 농가도 분포한다. 서쪽이 아산만의 황해와 인접하여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어업이 발달하였다. 해안에는 소규모 염전이 산재하며, 인근 연안에서 어류와 갑각류를 중심으로 다양한 어종이 어획되고 있다. 과거에는 만호리(晩湖里) 앞바다에서 이른 봄에 잡히는 숭어의 어란이 특산품으로 유명하였다.
평택항의 개발과 함께 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포승지구 및 경기원정지구, 포승2일반산업단지, 경기경제자유구역 평택포승지구, 평택 · 당진항 자유무역지역 등이 입지해 있으며, 이곳에는 자동차부품업체와 자동차 조립 · 생산 공장, 철강 공장, 대형 플랜트 공장 등 제조업체가 다수 위치한다. 특히 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포승지구의 개발은 황해안권 무역 거점 조성을 통해 국가 산업 발전을 선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해안고속도로가 읍 중앙을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국도 38호선, 국도 77호선이 경유한다.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과 평택항만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남서부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지방도 321호선, 지방도 345호선이 통과한다. 특히 1973년에 남양방조제가 완공되어 인접한 화성시와의 교통이 원활해졌다. 또한 내기리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걸친 서해대교가 완공되면서 새로운 교통 요지로 부각하였다. 황해안에 인접하여 포구가 특히 많았던 곳으로, 만호리는 인근 충청남도 당진, 서산 등지와 연결되는 포구로 유명하였다.
문화유산으로 원정리에 수도사(修道寺)가 있다. 경승지로는 만호리에서 서쪽으로 약 3㎞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전설을 간직한 채 우뚝 솟아 있는 영웅바위가 유명하다. 또한 공원으로 신당근린공원, 만호근린공원, 여술근린공원, 번제근린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평택시의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5.06㎢이고, 인구는 1만 2805명이다. 고덕면 행정복지센터가 고덕동에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기도 진위군의 고두면(古頭面) · 오량면(五梁面) · 소고니면(所古尼面) · 성남면(城南面) 일부, 경기도 수원군의 종덕면(宗德面) · 율북면(栗北面) · 수북면(水北面) 일부, 충청남도 평택군 북면(北面)을 통합하여 11개 리로 구성하고 진위군 고덕면이라 하였다. 면의 이름은 고두면의 ‘고’ 자와 종덕면의 ‘덕’ 자에서 따왔다. 1938년 평택군에 편입되었다.
2021년 11월 조례 제1988호에 따라 고덕면의 여염리 · 율포리 · 좌교리와 해창리 일부가 분리되어 신규 행정동인 고덕동으로 편제되었다. 그 결과 기존 고덕면[41리 165반]은 고덕면[30리 100반]과 고덕동[12통 78반]으로 조정되었다. 1995년 5월 10일 송탄시와 평택시, 평택군이 통합되어 도농 통합형 평택시가 출범하면서 평택시 고덕면으로 편제되었다. 당현리(堂峴里), 두릉리(杜陵里), 문곡리(文谷里), 동청리(東淸里), 해창리(海倉里), 궁리(宮里), 동고리(東古里), 방축리(防築里) 등 8개 법정리가 있다.
중앙의 바람산[41m] 등 구릉지가 몇 개 있으나 해발 100m가 넘는 산은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지역이 평지로 구성되어 있다. 진위천이 서쪽 면 경계를 따라 길게 이어지고, 곳곳을 관류하는 두릉천(杜陵川), 마경천(馬境川), 서정천(西井川) 유역에 넓은 평야가 분포되어 있다.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지역이다. 주요 농산물로 미곡과 보리 등의 생산량이 많고, 넓은 과수원 대지에서 나오는 배의 산출량이 많다. 축산업으로 한우, 젖소, 돼지, 오리 등의 사육이 활발하며, 양계와 양봉도 행해진다. 제조업 분야에는 제지 · 화학 계열 업체가 산재해 있으며, 최근에는 고덕국제화계획지구와 고덕국제신도시의 조성으로 토지 이용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교통은 국도 38호선, 국도 45호선이 남부 지역을 횡단하고, 지방도 302호선이 북부를 가로지른다. 이 밖에 시도 13호선과 시도 15호선 등 다양한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다.
문화유산으로 두릉리에 안재홍생가가 있다. 공원으로는 서남쪽의 진위천 변에 소풍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평택시의 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8.63㎢이고, 인구는 3,445명이다. 서탄면 행정복지센터가 금암리(金巖里)에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기도 진위군 일서면(一西面)의 5개 리, 이서면(二西面)의 6개 리, 이탄면(二炭面)의 8개 리,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율북면(栗北面) 황구지(黃口池)를 통합하여 10개 리로 편제하고 진위군 서탄면이라 하였다. 면 이름은 일서면과 이서면의 ‘서’ 자와 이탄면의 ‘탄’ 자를 땄다. 1938년 10월에 평택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 5월 10일 송탄시와 평택시, 평택군이 통합되어 도농 통합형 평택시가 출범하면서 평택시 서탄면으로 편제되었다. 금암리, 사리(寺里), 수월암리(水月巖里), 내천리(奈川里), 마두리(馬頭里), 회화리(檜花里), 적봉리(赤峰里), 장등리(長登里), 금각리(金角里), 황구지리(黃口池里) 등 10개 법정리가 있다.
기반암은 반상변정질(斑狀變晶質) 편마암이 대부분이다. 면내의 최고봉인 적봉(赤峰: 76m)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평탄한 지형이다. 황구지천이 서쪽 면 경계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흐르고 진위천이 면 중앙을 횡단하여 면을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이 밖에 오산천(烏山川), 신야천(新野川), 장등천(長登川)이 흐르면서 주변 지역에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경지면적이 넓은 편은 아니나 경지율이 비교적 높고, 논농사가 중심을 이룬다. 주요 농산물로 미곡과 두류를 중심으로 북쪽의 낮은 구릉지에서는 배의 과수 농업이 성하다. 축산업으로 한우, 젖소, 돼지, 닭을 사육하는 농가가 있다. 서탄일반산업단지 주변으로 전기, 식품 등의 제조업체가 산재해 있다.
교통은 국가지원지방도 82호선, 지방도 306호선이 경유하고, 시도 15호선과 시도 16호선, 시도 17호선이 면 곳곳을 연결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장등리에 보국사(輔國寺)가 있다. 사리에 안동 김씨(安東 金氏), 내천리에 순창 조씨(淳昌 趙氏)의 동성 마을이 있다. 면 남단의 적봉리, 금암리, 장등리 일대에 오산공군기지가 입지하고 있다.
평택시의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2.50㎢이고, 인구는 6,236명이다. 오성면 행정복지센터가 숙성리(宿城里)에 있다.
본래 경기도 수원군과 진위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원군 오정면(梧井面) · 숙성면(宿城面)의 대부분과 언북면(堰北面) · 포내면(浦內面) · 현암면(玄巖面) · 안외면(安外面) · 승양면의 각 일부, 그리고 진위군 고두면(古頭面)의 일부를 통합하여 14개 리로 개편하고 오성면이라 하였다. 면 이름은 오정면의 ‘오’ 자와 숙성면의 ‘성’ 자를 합하여 지은 것이다.
1938년 평택군에 편입되었다. 1989년 4월에 신설된 안중면에 금곡리, 안중리, 대반리, 삼정리, 학현리 등 5개 리를 넘겨주었다. 1995년 5월 10일 송탄시와 평택시, 평택군이 통합되어 도농 통합형 평택시가 출범하면서 평택시 오성면으로 편제되었다. 숙성리, 교포리(橋浦里), 신리(新里), 안화리(安化里), 양교리(梁橋里), 죽리(竹里), 당거리(堂巨里), 길음리(吉音里), 창내리(倉內里) 등 9개 법정리가 있다.
기반암은 주로 선캄브리아기의 편암이다. 북서부 경계에 솟아 있는 오봉산의 자락이 면내로 뻗어 있으나, 나머지 지형은 대체로 평탄한 편이다. 진위천이 동쪽 면 경계를 이루며 굽이쳐 흐르다가 평택호로 합류한 뒤 황해에 다다른다. 교포천(橋浦川), 대반천 등이 면 전체를 흐르면서 곳곳에 충적평야를 형성하였고, 북서부 일대의 침식평야까지 포함하여 광활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시의 대표적인 논농사 지대로서 미곡 생산량이 제일 많고, 보리 · 콩 등의 잡곡과 두류도 많이 산출된다. 채소류로 배추 · 무 등의 재배가 활발하며, 한우 · 돼지 · 닭 · 산양 · 오리를 사육하는 축산 농가도 분포한다. 이 밖에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의 수산물 어획량도 적지 않다. 면 북서쪽에 위치한 오성일반산업단지 주변으로 제조업 생산시설이 산재해 있다.
교통은 평택화성고속도로와 국도 38호선, 국도 43호선이 면의 중앙에서 교차하고 있으며, 시도 8호선, 시도 9호선, 시도 11호선 등이 면 전역을 연결한다.
면 중앙에 위치한 숙성리에 평택시농업기술센터, 평택농업생태원, 평택농업전시관, 평택시자연테마식물원 등이 입지하여 지역 농업 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평택시의 동북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4.01㎢이고, 인구는 1만 725명이다. 진위면 행정복지센터가 봉남리(鳳南里)에 있다.
조선시대 이래 오랫동안 경기도 진위군의 군청이 위치했던 지역의 중심지로, 조선 후기까지는 ‘현내면(縣內面)’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진위군 군내면(郡內面) · 일북면(一北面) · 이북면(二北面) · 마산면(馬山面)의 대부분과 이서면(二西面) 야막리(野幕里), 경기도 용인군 서촌면(西村面) 일부, 경기도 양성군 승량원면(升良院面) 일부, 경기도 수원군 청호면(晴湖面) 일부를 통합하여 12개 리로 개편하고 진위군 북면(北面)이라 하였다. 1938년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개칭됨에 따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진위’라는 이름이 일시 사라졌다가, 1948년 면 이름을 ‘진위면’으로 바꾸어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1983년에는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南四面) 진목리(眞木里)와 봉명리(鳳鳴里)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갈곶리(葛串里) · 청호리(淸湖里)의 일부와 고현리가 경기도 오산시 대원동(大元洞)에 편입되었으며, 같은 해 5월 10일 송탄시, 평택시, 평택군이 통합되어 도농 통합형 평택시가 출범하면서 평택시 진위면으로 편제되었다. 봉남리, 마산리(馬山里), 은산리(銀山里), 동천리(東泉里), 청호리, 갈곶리, 야막리, 가곡리(佳谷里), 견산리(見山里), 하북리(下北里), 신리(新里) 등 11개 법정리가 있다.
산지는 동부에 무봉산이 솟아 있고 남동부에 후암봉이 있다. 이 외의 지역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성 산지가 분포한다. 진위천의 물줄기가 중앙을 횡단하면서 면을 남쪽과 북쪽 지역으로 구분해 놓았고, 동부에 사후천(寺後川)과 서쪽 면 경계 지점에 오산천이 흐르면서 충적평야가 펼쳐진다.
경지면적은 시에서 하위에 머물고 있다.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약간 우세한 곳이나 농가인구는 격감하는 추세이다. 농산물로는 미곡 이외에 원예농업이 발달해 있으며, 채소류와 배 · 포도 등의 과일류가 생산된다. 이 밖에 젖소와 닭, 사슴 등의 사육도 행해지며, 양봉을 하는 농가도 있다.
오산과 용인에 인접한 수도권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관계로 제조업 분야 등 공업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이다. 대표적인 분야로 전자, 전기, 제과, 우유가공, 화장품, 자동차부품, 금속, 알루미늄 등 여러 업종의 업체와 각종 제조업 생산 시설이 들어서 있다. 진위일반산업단지, 진위2일반산업단지, 진위3일반산업단지와 평택하이테크협동화산업단지, LG디지털파크 등이 입지해 있다.
교통은 경부선과 경부고속철도[수서평택고속선]가 남북으로 종단하고, 이와 나란히 국도 1호선이 지난다. 동쪽 경계에는 경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이어지며, 지방도 387호선은 북쪽에서 서쪽을 연결한다. 이 밖에도 시도 16호선, 시도 17호선 등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산으로 동천리의 만기사 경내에 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 은산리에 정도전사당과 삼봉집목판, 봉남리에 진위향교대성전이 있다.
평택시의 서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2.56㎢이고, 인구는 2만 5988명이다. 청북읍 행정복지센터가 현곡리(玄谷里)에 있다.
본래 경기도 수원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원군 청룡면(靑龍面) · 율북면(栗北面) · 토진면(土津面) · 수북면(水北面) · 서신리면(西新里面) · 감미면(甘味面) · 숙성면(宿城面) · 목진면(木津面)의 일부를 통합하여 13개 리로 개편하고 경기도 진위군 청북면이라 하였다. 면 이름은 청룡면의 ‘청(靑)’ 자와 율북면의 ‘북(北)’ 자를 합하여 지은 것이다.
1938년 평택군에 소속되었으며, 1987년 경기도 화성군 양감면(楊甘面) 고념리(高念里)를 편입하였다. 1989년 용성리(龍城里)와 덕우리(德佑里)를 안중면에 이관하였다. 1995년 5월 10일 송탄시 · 평택시 · 평택군이 통합되어 도농 통합형 평택시가 출범함에 따라 평택시 청북면으로 편제되었고, 2016년에는 청북읍으로 승격하였다. 현곡리, 삼계리(三溪里), 고잔리(高棧里), 옥길리(玉吉里), 후사리(後寺里), 토진리(土津里), 백봉리(栢峰里), 어연리(魚淵里), 율북리(栗北里), 한산리(閑山里), 어소리(魚沼里), 고념리(古念里) 등 12개 법정리가 있다.
기반암은 주로 선캄브리아기의 편암이다. 대체로 비교적 낮은 구릉성 산지가 분포한다. 읍의 중앙에 덕지산, 남부에 무성산, 동남쪽 오성면과의 경계에 오봉산 등이 솟아 있다. 진위천이 동쪽을 흘러 고덕면과 면 경계를 형성하고, 남양호가 서쪽 화성시와의 경계를 이루면서 해안 평야지대를 만들었다. 이 외에 읍의 동쪽으로 관리천이 길게 관류한다.
전체 면적 중 평야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농가인구의 비율이 높아 농업이 활발하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을 중심으로 보리 · 콩 등의 잡곡과 고추 · 배추 등 채소류가 있으며, 특용작물로는 질 좋은 참깨가 산출된다. 또한 목장이 많아 축산업이 발달하였는데, 한우 · 젖소 · 돼지 · 닭 · 산양 · 사슴 · 오리 등이 대표적이며, 특히 젖소 · 산양 · 사슴 · 오리의 사육 두수는 시 전체에서 제1위를 차지한다.
최근에는 황해안 제1의 산업기지로 성장하면서 토지 이용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평택드림테크일반산업단지, 어연 · 한산일반산업단지, 현곡일반산업단지 등이 조성되어 조립금속 및 기계장비 관련 제조업체의 생산 시설이 다수 입지해 있다. 아울러 옥길리 일대에는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교통은 서부에 서해안고속도로, 동부에 평택화성고속도로가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동서 방향으로는 평택시흥고속도로와 평택제천고속도로가 지난다. 국도 39호선이 면 중앙을 남북으로 종단하고, 이와 교차하여 지방도 302호선이 지난다. 이 밖에도 시도 4호선, 시도 5호선, 시도 11호선 등이 놓여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산으로 옥길리에 평택무성산성지가 있다. 현곡리에 밀양 박씨(密陽 朴氏), 고잔리에 고령 신씨(高靈 申氏)의 동성 마을이 있다. 후사리에는 평택서부운동장이 위치한다.
평택시의 서남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5.9㎢이고, 인구는 5,723명이다. 현덕면 행정복지센터가 인광리(仁光里)에 있다.
본래 경기도 수원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원군 현암면(玄巖面) · 광덕면(廣德面)의 대부분과 가사면(佳士面) · 안외면(安外面) · 포내면(浦內面) · 승양면(升良面)의 일부를 통합하여 12개 리로 편제하고 경기도 진위군 현덕면이라 하였다. 면 이름은 현암면의 ‘현(玄)’ 자와 광덕면의 ‘덕(德)’ 자를 합하여 지은 것이다.
1938년 평택군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화양리(華陽里)와 인광리의 일부를 안중면에 이관하였다. 1995년 5월 10일 송탄시 · 평택시 · 평택군이 통합되어 도농 통합형 평택시가 출범함에 따라 평택시 현덕면으로 편제되었다. 인광리, 도대리(道垈里), 운정리(雲井里), 화양리, 황산리(黃山里), 덕목리(德睦里), 신왕리(新旺里), 대안리(大安里), 기산리(岐山里), 권관리(權管里), 장수리(長水里), 방축리(防築里) 등 12개 법정리가 있다.
기반암으로 대부분 지역에 편암이 분포한다. 산지로는 동남부에 고등산과 마안산, 중앙에 옥녀봉(玉女峰: 83m), 남쪽 해안가에 옥좌봉(玉座峰: 45m) 등이 솟아 있다. 이 외에 대부분 지역은 평탄한 지형을 나타낸다. 중앙에 여러 지류가 관류하며 아산만의 평택호로 흘러든다. 특히 도대천(道垈川) 유역에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였다.
경지면적이 평택시 전체에서 상위권에 속하며,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우세한 지역이다. 특히 아산방조제가 축조된 이후 해안 인근의 넓은 전답이 조수 피해를 입지 않는 안전답(安全畓)으로 바뀌어 벼농사 조건이 크게 개선되었다. 주요 농산물로는 고품질의 미곡을 비롯해 감자와 마늘, 그리고 특용작물인 참깨의 생산량도 많다. 축산업 또한 비교적 활발하여 한우 · 젖소 · 돼지 · 닭의 사육 두수가 시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
평택호와 아산만을 끼고 있어 천혜의 항만 조건을 갖춘 까닭에 어업도 발달하였다. 최근에는 제조업 생산 시설이 면 곳곳에 들어서고 있으며, 서남쪽 해안 일대에는 경기경제자유구역 평택현덕지구의 건설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북쪽 화양리 일원에서는 평택화양지구 도시개발사업이 진행 중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 토지 이용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교통은 국도 39호선이 면 중앙을 남북 방향으로 경유하면서 남쪽의 아산방조제를 통해 충청남도 아산시와 연결된다. 동쪽으로 지방도 303호선이 지나며, 면의 중앙으로 서해선 철도 건설이 예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시도 2호선과 시도 3호선, 시도 5호선 등 기타 도로가 면 곳곳을 연결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덕목리의 심복사 경내에 평택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 남쪽의 권관리 일대에 평택호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인근에 평택호예술공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