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1920년 7월 창간되어 1921년 1월에 통권 2호로 종간되었다. 편집 · 발행인은 고경상(高敬相)이며, 폐허사에서 간행하였다.
동인은 시에 김억(金億) · 남궁벽(南宮璧) · 오상순(吳相淳) · 황석우(黃錫禹) · 변영로(卞榮魯)이고, 소설에 염상섭(廉想涉) · 이익상(李益相) · 민태원(閔泰瑗)이다. 그 밖에 기고자는 나혜석(羅蕙錫) · 김원주(金元周) · 이혁로(李赫魯) · 김찬영(金讚永) 등이다.
김만수(金萬洙)는 철학 전공으로 취지에 동조하여 자택을 개방하고 폐허사 간판까지 붙였다(적선동, 곧 염상섭 출생 직전까지의 生家). 창간호는 회동서관(匯東書館) 주인 고경상이 1,000부를 발행하였고, 2호는 이병조(李秉祚)에 의하여 신반도사(新半島社)에서 발행하였다.
『폐허』의 제호는 실러(Schiller,J.C.)의 “옛것은 멸하고, 시대는 변하였다 · 내 생명은 폐허로부터 온다.”라는 시구에서 인용한 것이다.
후기에 “우리가 황량낙막(荒凉落寞)한 조선의 예원(藝苑)을 개척하여 거기다 무엇을 건설하고 부활하고 이식하여 백화난만한 화원을 만들어놓으면, 그것이 세계예원(世界藝園)의 내용, 외관(外觀)을 더 풍부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했는데, 바로 『폐허』를 발행한 취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이들을 ‘폐허파’라 하고, 그 문학적 경향을 퇴폐주의라 한다. 창간을 전후하여 3·1운동의 실패로 인한 실망과 경제적 파탄, 지식인의 실업사태 등으로 인한 불안에 곁들여 서구의 세기말적 사상의 영향으로 희망을 잃고 의지할 지주를 잃은 전지식인을 휩쓴 당시의 퇴폐적 분위기의 소산이었다.
오상순은 「시대고(時代苦)와 그 희생」에서 “우리 조선은 황량한 폐허의 조선이요, 우리 시대는 비통과 번민의 시대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폐허파를 일률적으로 퇴폐주의라고 보기는 어렵고 일부 퇴폐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
실제로 『폐허』에 발표된 이익상 · 김억 등의 견해는 오히려 퇴폐주의를 부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폐허』는 퇴폐주의 · 감상주의나 이상주의 · 낭만주의 등 여러 요소가 혼합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