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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의 돌실나이 / 표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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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생활
개념
실 · 종이 · 방적섬유 등의 백도 향상을 위하여 섬유의 내부 및 표면에 부착된 자연색소를 제거하는 탈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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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실 · 종이 · 방적섬유 등의 백도 향상을 위하여 섬유의 내부 및 표면에 부착된 자연색소를 제거하는 탈색법.
내용

≪석명 釋名≫에서는 “흙이 흰 것을 표라 말하니, 표는 가볍게 날아가 흩어지는 것(土白曰漂 漂輕飛散也)”이라 하였다. 더러움을 날아 없어지게 한다는 뜻으로 비루(飛陋)라는 용어가 있으니, 이것이 오늘날의 비누이다.

표백공정은 광의로는 정련(精練)과 표백이 포함되고, 협의로는 각종 방법으로 섬유에 부착된 유색물질을 파괴하여 제거하는 것이다.

표백공정의 목적은 표백만의 경우와 선명한 염색을 하기 위한 전처리 경우가 있으므로 목적에 따라 직물의 제직 전이나 후에 행한다. 조선시대에는 두 가지 목적을 하나로 하여 마전이라 하였다. <농가월령가> 8월령의 “명주를 끊어내어 추양(秋陽:가을볕)에 마전하고 쪽들이고 잇들이니 청홍이 색색이라.”고 한 구절에서도 알 수 있다.

합성표백제가 출현되기 전까지는 회즙(灰汁 : 잿물)을 넣은 물에 섬유를 넣고 끓인 다음 수세하여 들판에 널어서 햇볕으로 수분을 증발시키는 천일표백법(天日漂白法)이 사용되었다. 햇빛 아래 널어 놓으면 자외선에 의하여 물의 오존과 과산화수소 발생으로 자연 산화 표백되는 것이다.

표백에 사용된 잿물은 각 지방의 여건에 따라 나무·볏짚·콩깍지·들깨짚·메밀짚 등의 재료를 태워서 만들었다. 회즙은 여과용 천을 밑에 깔아 놓은 시루에 재를 담고 물을 부어 추출하였다.

조선시대 말부터는, 서양에서 수입한 가성소다(양잿물)를 공정이 편리하여 주로 사용하였다. 1900년 초기까지의 표백의 공정은 직물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난다.

무명은 물에 담갔다가 잿물에 삶아 두드려 빤 뒤, 다시 잿물을 넣은 물에 삶아서 수세 후, 햇볕이 잘 드는 냇가의 바위·자갈·잔디 위에서 천일표백을 하였다. 마르면 물에 적셔 널어 말리고, 다시 삶고 하는 공정을 되풀이하는데, 많이 반복할수록 증백효과가 커진다. 명주는 한 번의 마전으로 정련효과만을 낸다. 대개의 마전은 냇가의 마전터에서 솥을 걸어놓고 잿물에 천을 넣어 삶고 세탁 후 건조작업까지 끝낸다.

옷에 묻은 유색오염물을 표백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삼베는 붉은 비름과 함께 삶는다. 더러움은 토란즙이나 콩깍지잿물·백창포뿌리가루를 사용한다.

그밖에도 녹두물·두부순물·무리풀·유황·오매물[烏梅煎水] 및 생무·살구씨·대추씨·쇠뼈태운재·복숭아잎·반하(半夏)가루·오징어뼈가루·활석(滑石)·석회·고백반(枯白礬)·마늘즙·은행즙·동아즙·생강즙 등이 사용되었다.

1930년대 말까지 잿물 이외에 사용된 세제로는 콩이나 팥·녹두 등의 분말을 물에 개어 사용하였다. 또 오줌(잿물의 주성분은 {{#300}}이고, 소변에는 {{#301}}가 포함되어 알카리 세탁을 도움)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소기름에 재를 섞어 잿물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세탁비누의 전신이고 세탁비누가 제작되어 일반화되고 부터는 세탁비누를 따뜻한 물에 풀어 놓고 물에 담갔던 천을 넣고 문대어 빨아 헹구는 방법이 일반화 되었다.

조선시대 각색 염색천의 세탁과 탈색법은 다음과 같다.

다홍색은 산즙(酸汁)을 넣은물, 자주색은 오줌, 쪽색은 녹두물과 순두부물에 빨고, 농옥색을탈색할때는 무리물에 삶는다. 초록을 탈색할 때는 초산에 빤다.

조색(朝色)은 치자물에 빨면 빛나고, 소방(蘇枋)염색천은 유황(硫黃)냄새를 쏘인다. 각종 약물과 괴화염색(槐花染色)천은 오매(烏梅)추출액으로 빤다. 고약(膏藥) 묻은 것은 생무로 문질러 빤다.

먹 묻은 것은 우슬(牛蝨)가루를 물에 개어 발라논 후 마르면 털어낸다. 오래된 먹은 살구씨를 씹어 문지르던가 대추를 바른다. 머리때 묻은 것은 소금에에 끓여 빤다.

피[血]묻은 것은 죽을 쑤어 더운 김을 쏘여 우골(牛骨) 태운 재를 뿌려놓고, 담배진 묻은 것은 복숭아 잎을 찧어 문지른 후 냉수로 빤다.

기름과 먹이 함께 묻은 것은 반하가루, 오징어뼈가루, 활석, 고백(枯白)을 같은 분량으로 섞어 가루로 만들어 발라 깨끗이 빨고 마늘을 찧어 문지른다. 또 살구씨와 대추로 문질러 빨기도 한다.

여름옷에 곰팡이 슨 것은 은행즙과 마늘즙, 동과즙(冬瓜汁)에 빤다. 얼룩진 곰팡은 도라지 담근 물에 빨고, 침수(浸水)로 곰팡슨 것은 무즙에 빤다.

기름 묻은 것(부분 묻은 것)은 활석이나 동편벽의 흙이나 합분가루[氷蛤紛]를 곱게 갈아 뿌려 놓고 종이로 덮은 후 다리미로 다린다.

누른물 묻은 것은 생강즙을 문지른후 물에 빤다. 옷때는 토란 삶은 즙에 빨던가 콩깍지 잿물에 빨기도 하며 창포흰뿌리를 칼로 얇게 저며 볕에 말린후 가루로 만든 후, 물에 넣고 저은 후 때 묻은 옷을 넣고 가루를 뿌리며 빨면 깨끗해 진다.

1700년대부터는 화공약품의 발달로 표백제 성질에 따른 다양한 방법이 등장하였다. 1774년 스웨덴의 화학자 카롤 빌헬름셀레가 염소를 발견하고 새로운 표백방법으로 발전시킨 이후 1785년에는 프랑스의 화학자 클로드 베르톨레가 염소의 표백성질을 증명하였다. 자벨(Javel)은 가성소다액에 염소를 용해시켜 자벨수(Eau de Javel)라는 현재의 차아염소산소다액을 만들었다.

이어서 1799년 스코틀랜드의 화학자 찰스 테넌트가 염소와 소석회를 결합한 포화석회액에 염소를 용해시켜 현재의 표백분을 만들었다. 그 후 이것은 천과 종이표백에 주로 사용되었다.

합성표백제의 발달로 천일표백법의 사용은 종료되고 다양한 표백법이 제시되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표백법은 그 성질에 따라 산화표백법, 환원표백법과 증백효과를 향상시키는 목적의 청미부여법, 형광증백법이 있으며 특히 형광증백법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화표백법에는 염소계 표백제에 표백분, 차아염소산나트륨, 아염소산나트륨, 유기염소표백제와 과산화물계 표백제의 과산화수소, 과붕산나트륨, 과탄산나트륨, 과산화아세트산, 과망간산칼륨등을 사용하여 착색물을 산화시켜 분해 제거하는 것이다.

환원표백법에는 아황산, 아황산수소나트륨, 하이드로술파이트(롱갈리트)를 사용하여 착색물을 환원시켜 분해 제거한다. 청미부여법은 청색염료로 착색시키는 것이고 형광증백법은 청색형광을 나타내는 물질과 섬유에 친화성이 있는 형광증백제로 처리한다.

1920년대부터는 서양에서 1700년대부터 발달한 화공약품의 수입품으로 붕산, 하이드로설파이드, 아황산, 표백분, 증탄산소다, 세탁소다, 마르셀비누, 암모니아수, 라구스, 주석산, 에치렌, 트리크롭, 테드라크롬, 휘발유, 벤졸, 에텐, 사염소탄소, 크롬 등을 세탁과 표백에 주로 사용하였다.

1920년대 표백에는 주로 붕산,하이드로설파이드,아황산등의 약제를 세제액에 담가 면이나 마 등을 삶아서 표백하고, 황변이 잘 되는 견직물이나 인조견은 햇볕에 건조시키지 않고 좋은 비누를 사용토록 유도하였다.

1930년대 무명 표백법에는 뜨거운 물에 비누를 풀어 때리고 찬물에는 소다를 첨가한 후 주물러서 뜨거운 물에 빠는 방법이 소개되었다.

백의의 착용은 계속 증대되므로 1922년에는 흑색의의 착용을 장려하고 1930년에는 염료를 가정에 무상으로 분배하여 가정에서 염색을 하고 색의를 착용하게 하였다. 점차 위생과 미관의 문제 등으로 백의를 규제하고 색의를 장려하는 정책으로 세탁을 위생적이며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백색의를 입고 외출하면 물감을 뿌리기도 하였다.

1923년에는 삼청동에 공동세탁장을 설치하고 1924년에는 인천에도 공동세탁장을 설치하였으며, 1930년에는 성동에 부민공설 세탁장 설치로 당시로서는 문화적이요, 위생적인 장소로 개설된 것이었다. 한편 1920년대에는 공동 세탁장의 등장과 함께 세탁표백을 전문적으로 하며 삯을 받고 빨래를 해주는 전문적 삯 빨래꾼이 등장하였다.

1925년대 목도리세탁법은 따뜻한 물에 비누를 타서 손바닥으로 가만가만 문질러빠는데, 색이 있는 것은 초산을 시큼하게 탄 물에 담갔다가 빠는 세탁 지식을 전달하였다.

1930년대 건조세탁법은 사염화탄소, 크롭, 트리크롤, 에치렌, 테트라크롬 등으로 지방을 분리시키는 세탁법과 함께 휘발유, 벤졸, 에텐 등의 휘발성 약품을 세탁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다른 세탁법으로는 세탁전에 소다를 넣은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미지근한 물에 빨고 누렇게 된 것을 크롤칼키로 표백하고 난 다음, 유산소다에 약 30분간 담가두어 크롤칼키 냄새를 제거한다. 1930년대 인조견 세탁법은 냉수에 달걀껍질을 깨뜨려 넣고 하룻밤 담갔다가 소금을 넣고 헹군 후 비누로 빠는 법도 소개되었다.

1930년대 정련표백법에는 마르셀비누와 세탁소다 등이 사용되었다. 다른 정련 표백법으로는 금속용기를 피하고 두루마기 겉감에 세탁소다 10몸메(두줌)를 물에 녹인 다음 무명을 넣고 약 1시간 끓인 뒤에 충분히 빤다.

정련한 무명 100몸메에 대하여 표백분 10몸메, 중탄산소다 6몸메를 혼합하고 그 중에 먼저 정련한 무명을 넣어서 약 1시간 후에 충분히 빨은 후 또다른 그릇에 물을 담고 염산 한 잔을 부어 섞은 다음 먼저 빨은 무명을 그 속에 넣어서 20분후에 충분히 빨아야 한다. 그 다음 햇볕에서 여러날 말린다.

이렇게 다양한 표백 및 세탁법이 등장한 이후, 전기 세탁기가 1926에 소개되고 1929년에는 외제 세탁기가 수입되며, 1958년에는 한국산 세탁기가 등장하였다.

참고문헌

『산림경제(山林經濟)』
『규합총서(閨閤叢書)』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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