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척은 길이의 단위를 통일하기 위하여 표준이 되도록 만든 도량형이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어떤 척을 표준척으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없어 이를 유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조선 초기의 표준척은 황종척·주척·영조척·조례기척·포백척 등이 있었다. 조선 후기의 표준척은 포백척을 제외하고 조선 전기의 표준척의 길이와 큰 차이가 없었다. 대한제국기에 도량형 규칙을 반포한 이후, 1척은 0.30303m로, 1미터는 3.3척으로 정리하였다. 오늘날 1척은 30㎝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어떤 척을 표준척으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를 유추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한척 혹은 고구려척, 당대척 등이 사용되었음을 근래 각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척은 기능에 따라 명칭을 부여한 것이 아니고, 특정 시기 혹은 시대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부른 것이다.
이후 조선 초기 세종대에는 해주산 거서(秬黍) 알을 기준으로 황종척을 만들고, 이를 기준으로 영조척 · 조례기척 · 포백척 등 각 척의 길이를 확정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표준척은 조선 초기에 연원하며 주척을 제외하고 용도에 따라 명칭이 정해졌다.
조선 후기 영조대에는 삼척부 포백척을 이용하여 표준척을 새롭게 교정하였는데,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척이 소실되었고, 다소 문란하였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표준척은 포백척을 제외하고 조선 전기의 표준척의 길이와 큰 차이가 없었다.
표준척(標準尺)은 길이의 단위를 통일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삼국 및 고려시대에도 존재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표준척이 어떤 척인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척은 이성산성(二聖山城) 출토의 29.5㎝와 23.7㎝, 부여 쌍북리 출토의 29㎝ 등이 있었다. 이들 척은 표준척이라는 기록은 없지만, 표준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표준척이라는 기록과 자료는 발견되지 않지만, 표준척이 사용되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지척(指尺)은 양전을 위해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표준척의 종류와 길이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길이의 제도는 10을 1분(分)으로, 10분을 1촌(寸)으로, 10촌을 1척(尺)으로, 10척을 1장(丈)으로 하는데, 주척(周尺)을 황종척(黃鍾尺)에 비교하면 주척 1척은 황종척의 6촌 6리이고, 영조척(營造尺)을 황종척에 비교하면 영조척 1척은 황종척의 8촌 9리이고, 조례기척(造禮器尺)을 황종척에 비교하면 조례기척 1척은 황조척의 8촌 2분 3리이고, 포백척(布帛尺)을 황종척에 비교하면 포백척 1척은 황종척의 1척3촌4분8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표준척은 황종척 · 주척 · 영조척 · 조례기척 · 포백척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표준척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이 없지만, 교정한 황종척의 길이와 문헌의 자료에 그려져 있는 척 등을 종합하여 유추하면 아래의 〈표 1〉과 같다.
척의 종류 | 경국대전 | 길이(cm) |
---|---|---|
황종척 | 1.000 | 약 34.48 |
주척 | 0.606 | 약 20.62 |
영조척 | 0.899 | 약 30.80 |
예기척 | 0.823 | 약 28.63 |
포백척 | 1.348 | 약 46.66 |
〈표 1〉 조선 전기 표준척(尺)의 길이 |
한편, 조선 후기에는 1740년(영조 16) 삼척부에 존재하는 포백척을 이용하여 척을 교정하였는데, 이는 길이의 통일을 위해 표준척을 교정하였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척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궁중유물관에는 사각으로 된 유척(鍮尺)이 존재한다.
소위 ‘사각유척’은 사각형에 황종척 · 주척 · 영조척 · 조예기척 · 포백척 등을 모두 반척(半尺)으로 눈금인 촌과 분을 표시하고 있다. 사각유척을 만든 것은 척의 표준을 위해서 국가가 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한 조선 후기의 표준척을 이해할 수 있는데, 다른 척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포백척은 전기보다 다소 신장되었다.
그리고 대한제국기에 도량형 규칙을 반포한 이후, 표준척은 다시 정리되었는데, 1척은 0.30303m로, 1미터〔米突〕는 3.3척(尺)으로 하였다. 이는 일본의 곡척에 근거하여 1척의 표준척을 만든 것이다. 오늘날 1척은 30㎝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척은 전국의 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곳에 전시되어 있지만, 이를 표준척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궁중유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사각유척과 유척(鍮尺)은 금속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호조와 ‘□척’, ‘□□척’ 등이라는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관청의 이름과 척의 이름이 기록된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국가가 척의 표준화와 검사를 위해 제작한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표준척은 이러한 자료를 통해 그 실체를 살필 수 있다.
표준척은 길이의 통일을 위해 만든 것이므로, 표준척이 해명되면 이를 통한 양기의 부피, 저울의 무게 등을 모두 규명할 수 있다. 따라서 표준척은 도량형에서 길이의 기준이 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