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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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 영남 · 강원 또는 기타 해안지방에서 풍신에게 올리는 제의를 지칭하는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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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음력 2월 영남 · 강원 또는 기타 해안지방에서 풍신에게 올리는 제의를 지칭하는 용어.
내용

2월 초하루부터 스무날까지 20여 일간에 걸쳐 영남·강원 또는 기타 해안지방에서 바람을 맡은 신에게 지내는 고사이다.

음력 2월은 영등달이라고도 하여, 풍신의 명칭은 영동할만네·영동(등)할머니·풍신할만네·2월할만네·영동바람·풍백(風伯) 등으로 불린다. 《동국세시기》 2월 삭일조(朔日條)에는 영남의 가신제(家神祭)를 ‘영동〔靈登〕’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풍신제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하늘에 있는 ‘영동할머니’가 해마다 2월 초하루가 되면 인간 세상을 보기 위하여 딸과 며느리 중 어느 한 사람만을 데리고 지상에 내려와 스무날 만에 올라간다고 한다.

그런데 딸을 데리고 내려올 때는 아무 탈이 없으나 며느리를 데리고 내려올 때는 그 며느리가 노하여 폭풍을 일으키므로 전답을 휩쓰는 일이 심하다고 하며, 이 피해를 막기 위하여 농가에서는 ‘바람올린다.’고 하여 영동할머니와 그 며느리에게 빈다는 것이다. 풍신은 농사에 관계된 신으로 잘 빌어 노하지 않아야 농사가 잘 된다고 믿는다.

이 풍신설화는 시어머니와 딸과 며느리간의 묘한 삼각적 이해 관계를 농사의 풍년·흉년과 관련시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초하루에 바람이 불면 그 해 농사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을 것을 염려하여 딸을 데리고 오며, 비가 오면 며느리를 데리고 온다는 속신이 있다.

풍신할머니는 심술기가 많아, 비가 오면 풍년이 들기 때문에 먹을 것이 넉넉하며 서둘러 딸을 데리고 오지 않아도 일년 내내 배불리 먹을 수 있으므로 자기 딸을 데리고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길쌈과 관계된 이야기로, 베를 짤 때 비가 오면 습도 조절이 잘 되어 베짜기가 좋아 딸이 베를 잘 짜라고 두고 오고, 바람이 불면 기후가 건조하여 베올이 떨어져 베를 짤 수가 없으므로 며느리가 베를 짜다 골탕먹으라고 며느리를 두고 온다는 것이다.

강원도 지방의 풍신할머니는 계수나무 숲에서 사는 신으로 셋이 있다. 이 세 신은 2월 10일부터 올라간다고 하는데 2월 10일에 제일 손위 할머니가, 다음 2월 15일에 그 다음 할머니가, 그리고 2월 20일에 마지막 할머니가 올라간다고 한다. 이 세 할머니 외에 함께 대동한 수행원 몫을 하는 수부를 위하여 ‘수구밥’이라는 것을 따로따로 옆에 놓는다.

풍신제의 의식 절차는 지방에 따라 다소 다른데, 영남과 강원 지방의 경우를 대표적인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하루 전날인 정월 그믐날 문전에 황토를 깔고, 대문이나 사립짝에 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 몇 개를 꽂은 금줄을 2, 3일 전에 문에 걸어 걸인이나 병자 등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새벽 첫닭이 울면 우물에서 정화수를 떠서 장독대나 뒷간에 둔다. 아침이 되면 섬밥을 해서 볏가릿대〔禾竿〕에 가져다 놓고 주부가 그 해 농사의 풍요 및 집안의 태평, 건강과 안녕을 기도드린다.

그런 다음 푸른 댓가지 세 개를 교차하여 위에서 1자쯤 되는 곳을 묶고, 색실·색헝겊조각·백지를 달고 그 위에 정화수를 둔다. 정화수는 10일·15일·20일에 세 번을 간다.

대개는 뒤뜰에 떡·밥·탕·채소를 놓고 식구 수대로 숟가락을 밥에 꽂고 절을 하며 기원한다. 또, 제를 지낼 때도 소지를 가족 수대로 끊어서 이것을 하나하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불을 태우며 빈다. 소지를 올릴 때 불에 태운 종이재가 높이 올라가야 좋다고 믿는다. 제에 썼던 음식은 이웃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

몇 가지 금기를 살펴보면, 풍신할머니가 내려와 있는 동안 이웃집에서 음식이 들어오면 풍신을 모신 단 위에 일단 내다 놓은 다음에야 먹는다. 부정한 일, 곧 동네 사람이 죽는다든가 동물이 죽는 일이 생기면 당분간 단 위에 물 떠놓는 일을 중지하며, 초하루에 여자가 남의 집을 방문하는 일은 물론 삼가야 한다.

어촌에서는 한해 동안 큰 비바람 없이 무사히 많은 고기를 잡게 해 달라는 뜻에서 풍신을 모신다. 농촌과 비슷하나 다른 점은 정월 초하루부터(1개월 전부터) 바다에서 새로 잡은 고기, 즉 종류가 다른 고기를 한 마리씩 모아서 잘 저장하거나 부엌에 매달아 둔 솔가지에 꿰어 달아 놓았다가 풍신날 제사의 제물로 쓴다는 점이다.

한지를 장독 장단지 앞에 붙이고 그 앞에 찰밥·고기·맑은 물을 차려놓고 제를 지내는데, 빌고 난 뒤 비가 오면 ‘물영동 내렸다.’고 하며, 바람이 불면 ‘바람영동 내렸다.’고 한다.

예로부터 영동할머니가 다녀간다는 2월은 ‘남의 달’로 인간의 달이 아니라 하여 이사도 하지 않고 혼인도 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강원도편-(문화재관리국, 1979)
『한국의 세시풍속』(최상수, 홍인문화사, 1969)
「영동지방의 가신설화(家神說話)와 주술가고(呪術歌考)」(김선풍, 『관동어문학』 창간호, 관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78)
집필자
김선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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