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고종 29) 권두인의 후손 권재덕(權載德)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광정(李光庭)의 서문과 권말에 김한동(金翰東)의 발문이 있다.
8권 5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부(賦) 2편, 시 125수, 소(疏) 2편, 권3·4에 서(書) 8편, 잡저 10편, 서(序) 6편, 기(記) 12편, 권5·6에 발(跋) 9편, 상량문 2편, 축문 15편, 제문 15편, 애사 2편, 구묘문 11편, 권7·8에 행장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의 「천연대부(天然臺賦)」에서는 도산(陶山)에 있는 천연대가 절승지로서 앞에는 큰 들과 내가 있고 뒤에는 기암과 절벽이 있어 대장부의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적지라며, 이황(李滉)의 심오한 학문이 이 천연대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찬미하였다. 시의 「기탐라적거(寄耽羅謫居)」·「청심루우음(淸心樓偶吟)」·「등고성(登古城)」 등은 선현들의 자취를 돌아보며 인생의 무상함을 읊은 작품들이다.
서(書)의 「여도산사림(與陶山士林)」에서는 『퇴계문집(退溪文集)』을 간행하는 과정에서 착오된 부분이 많이 있음을 지적하고, 개간할 때에는 정밀한 교열을 거쳐 정확한 글을 펴내는 것이 선현을 존경하는 뜻이 된다고 강조하였다. 「여풍산제장별지(與豊山諸將別紙)」에서는 삼태사묘(三太師廟)에서 일어난 위차선후설에 대해 고례를 고수할 것을 주장하였다.
기의 「고성기(古城記)」는 고성의 자취를 따라 그 현황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또한 수축하여 후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제허미수전첩후(題許眉叟篆帖後)」는 당시 전서(篆書)의 대가로 알려진 허목(許穆)의 글씨를 받아 보배로 간직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이 밖에 영조 때 당쟁을 없애고 정도를 펴야 된다고 건의한 영남의 거유 이현일(李玄逸)의 행적을 기록한 「갈암선생행장(葛菴先生行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