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으로 흘러내리는 학림천과 나란하게 고인돌 상석 7기가 분포하고 있다. 원래는 8기가 있었다고 한다. 7기가 남아 있다고 하여 ‘칠성바위’로 불리기도 했다. 해안가 반대쪽 즉 북서쪽에서부터 해안가 쪽인 남동쪽으로 가면서 1호~7호까지 명명되어 있다.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경지정리 때 3호와 5호 사이의 논에서 7기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그 중에 4기는 돌을 세워 1매씩 쌓아 개석을 덮었고 내부에서 마제석검과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즉 현재 남아 있는 고인돌의 상석 이외에도 지하에는 많은 수의 청동기시대 돌널무덤이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기의 상석 규모는 길이×폭×두께가 1호: 222×205×35㎝, 2호: 310×174×193㎝, 3호: 240×170×64㎝, 4호: 불명, 5호: 213×174×38㎝, 6호: 206×124×35㎝, 7호: 150×80(잔존)×25㎝이다.
기반식 고인돌로 보고되었지만 상석 아래쪽이 명확하게 조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는 개석식 고인돌일 가능성이 높다. 1호 상석 아래에는 4개의 지석으로 추정되는 받침돌 4매가 놓여 있고 상석의 상면 2곳에 성혈이 새겨져 있다, 2호, 4호 상석의 아래에는 상석을 받치는 돌이 놓여져 있는데 고인돌의 전형적인 지석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 4호 상석의 상면에도 성혈이 새겨져 있다. 3호와 5호 상석 아래에는 개석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다.
고인돌 7기가 분포하고 고인돌 사이에서 돌널무덤이 노출되었다는 사례를 감안한다면 이 일대에 대규모 무덤군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의 취락이 분포할 것이다. 남해안지역 해안가를 따라 대규모 지석묘군이 분포한다는 사실과도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