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에서 담양-장성간 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한 것이 계기가 되어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4년과 2008년도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2004년도 조사는 고속도로 구간에 해당되며, 2008년도 조사는 인터체인지구간(ⅠⅣ구역)에 대한 조사에 해당된다. 유적은 영산강과 그 지류인 대전천 사이의 충적대지에 분포한다. 담양태목리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20기, 원삼국시대삼국시대의 주거지 1,000여 기, 삼국시대 무덤 95기, 수혈(竪穴) 83기, 우물 4기, 구(溝) 26기, 지상식건물지 7기 등이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돌대문토기(突帶文土器)가 출토되는 이른 시기의 세장방형주거지가 1동, 장방형주거지가 1동, 휴암리형 방형주거지가 1동, 송국리형 원형주거지가 17동이다. Ⅲ구역 1호 주거지가 세장방형주거지인데 내부에 초석, 벽주혈, 위석식노지(圍石式爐址), 벽구(壁溝)가 설치되었다. 위석식노지는 한쪽 단벽에 치우쳐 있는데 노지 내에서도 3개의 구역으로 구분되는 것이 특징이다. 주거지 내부에서 절상돌대문토기편, 발형토기, 호형토기, 장방형석도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 19동은 청동기시대 중기에 일반적으로 보이는 송국리문화 단계의 주거지이다.
원삼국~삼국시대 주거지는 대부분 방형 혹은 장방형이다. 유구간의 중복관계가 심해 온전히 내부구조를 알 수 있는 주거지는 적다. 호남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는 정연한 4주식의 주혈이 확인되는 예는 소수이고 대부분 주혈이 확인되지 않는다. 바닥에 바로 기둥을 세우고 중간에 별도의 시설을 설치했을 것이다. 잔존상태가 양호한 주거지의 경우 벽면에 부뚜막을 설치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아궁이부, 연소부 등이 확인된다. 연소부에는 솥받침 시설인 지각이 남아 있는데 주로 돌을 사용하였다. 벽은 점토와 목재를 혼용하여 벽체를 설치하였다. 주거지에서는 주로 연질장란형토기, 단경호, 파수부 시루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은 대부분 주구만 확인된 분구묘이다. 주구묘(周溝墓)라고도 하지만 주구 내에 흙을 성토한 분구가 있었던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분구묘라고 하였다. 분구묘는 조사대상지에서 대체로 북쪽에 분포하고 남쪽에는 주거군이 분포한다. 그 가운데에는 주거지와 분구묘가 중복을 이루고 있다. 중복이 심해 전모를 쉽게 파악할 수 없지만 평면형태는 대체로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장축방향은 남북과 동서방향으로 양분되는데 북쪽에서 확인된 분구묘의 장축방향은 대체로 남북향이며, 남쪽에서 확인된 분구묘는 장축이 동서방향이다. 주구간에 공유되거나 연접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개방부의 방향을 달리한다. 특히 남쪽에 위치하는 Ⅲ구역 62호 분구묘는 잔존길이가 56m 내외로 대형인데 이 62호를 기점으로 남쪽으로 가면서 점차 분구가 대형화된다. 분구내에서 확인된 매장주체부는 빈약한 편이다. 분구묘의 주매장주체부로 인식될만한 옹관묘나 토광묘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주구나 대상부의 한쪽면에서 토광묘나 옹관묘가 1~2기 확인되었을 정도이다.
수혈은 Ⅰ·Ⅱ구역에서 3기, Ⅲ구역에서 66기, Ⅳ구역에서 14기가 조사되었다. 평면형태가 깊이 등에서 정형성은 없다. 주거의 부속시설일 가능성이 있으며 일부 수혈은 분구묘의 토광일 가능성도 있다.
구는 Ⅲ구역에서 23기로 가장 많이 조사되었다. 분구묘의 주구와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아 구로 판단하였으나 일부는 분구묘일 가능성도 있다.
지상식건물지는 Ⅲ구역에서 4기, Ⅳ구역에서 3기가 조사되었다. 2×2칸이 많고 1×1칸, 2×3칸 등 조사된 수에 비해 다양한 편이다.
담양태목리유적의 조사를 통해 영산강 상류에도 대규모의 삼국시대 취락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한 취락 안에 주거군과 무덤군이 구분되어 분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삼국시대 주거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고 다양한 형태의 분구묘를 통해 당시의 매장풍습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호남지역 삼국시대 취락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