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충북대학교박물관에서 송두리 산 60번지 일대 농공단지 예정부지에 대해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2003년 송두리 157번지 일대의 진천~진천IC간 도로확장구간에 대해 동일한 지역에서 마한-백제의 생활면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현,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이, 그 아래층의 구석기문화층은 중원문화재연구원(현, 중원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유적은 해발 120m 내외의 야트막한 구릉지에 위치한다. 1990년 조사에서는 원삼국시대 토광묘 2기, 신라 석곽묘 3기, 고려~근대의 무덤 10기가 확인되었다. 토광묘는 유물부장위치, 토층 등을 통해서 볼 때 목관이 있었을 것이다. 2호 토광묘 바닥에는 직경 58㎝, 깊이 22㎝ 정도의 요갱이 굴착되어 있었다. 2기의 무덤에서는 양이부원저단경호, 조합우각형파수부원저장경호 등의 와질토기와 단조철부, 철겸 등의 철기류, 청동환, 8자형 청동기 등의 청동유물이 출토되었다. 신라 석곽묘로 보고된 3기는 횡구식석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기의 무덤에서 부가구연장경호, 개배, 완 등의 토기류와 철촉, 금동제이식 등이 출토되었다.
2003년 조사에서는 구석기문화층과 함께 마한~백제의 주거지, 수혈, 주혈군, 나무귀틀유구 등이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6기가 조사되었는데 그 중 5기는 벽구와 주혈만이 잔존한다. 평면형태는 원형, 말각방형이다. 비교적 잔존상태가 양호한 수혈주거지 1기는 평면형태가 북쪽은 말각방형, 남쪽은 타원형에 가깝다. 내부에는 주혈이 많이 굴착되어 있고 바닥면에서 2개의 노지가 확인되었다. 많은 주혈과 노지의 상태로 볼 때 적어도 3차례 이상 개수되어 중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나무귀틀유구는 구덩이를 파고 참나무로 정방형의 틀을 짜고 외부는 점토로 보강한 구조이다. 주변에서 박자 및 도침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토기생산과 관련한 집수시설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구상유구(溝狀遺構), 노지(爐址) 등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구석기문화층은 2개층이 확인되었다. 기반암 풍화층 바로 위의 제1문화층은 유물 양상이나 퇴적으로 볼 때 중기 구석기 혹은 그 이전의 시기로 추정된다. 제2문화층은 후기 구석기층이다. 두 문화층에서 출토된 석기는 주먹도끼, 찍개, 여러면석기, 각종 찌르개, 긁개, 새기개, 밀개 등 모두 2,159점이다.
진천송두리유적은 구석기시대부터 근세까지 다종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어 이 일대가 선사시대부터 생활의 터전으로 이용되었던 것을 알려준다. 원삼국시대 토광묘와 마한~백제시대의 주거지를 통해서 볼 때 진천지역이 한성백제의 이른시기부터 활발한 교류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