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집터·경작유구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개설
내용
부뚜막 시설 내에서 확인된 솥받침은 석재가 이용되었는데 깊은바리모양 토기(심발형토기) 저부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바닥과 벽면이 만나는 부분에 탄화된 목재흔이 잔존하는데 벽면에 목재 구조물을 세우고 그 앞을 점토로 다져서 벽체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과 벽면은 대부분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는데 일부는 점토를 사용해 다짐한 것도 있다.
수혈유구는 9기가 조사되었는데 주거지와 혼재되어 분포한다. 평면형태는 원형, 방형, 장방형, 부정형 등 다양하다. 2호 수혈은 평면형태가 원형에 가깝고 규모는 직경 170㎝, 깊이는 20㎝ 정도이다. 내부에서 삼각거치문이 시문된 대형 옹형토기 1점과 소형 옹형토기 및 격자타날문 장란형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는데 저장혈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경작유구는 해발 18.5~19.5m의 완경사면에서 조사되었다. 상하로 2개의 층이 조사되었다. 단면 U자형의 고랑만 확인되고 두둑은 확인되지 않았다. 고랑의 방향은 등고선과 일치한다. 상층 경작지는 고랑의 폭이 10~25㎝ 정도이다. 고랑 내부에서 적갈색 연질 타날문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하층 경작지는 고랑의 폭이 14~36㎝로 상층에 비해 넓은 편이다. 고랑 내부에서 적갈색 연질토기, 회청색 타날문토기, 파수편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에서는 심발형토기, 장란형토기, 옹형토기, 원저단경호 등의 토기류와 철도자 등의 철기류 등 모두 33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과 주거지 내부구조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 결과를 통해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중반 대에 해당되는 유적으로 추정된다. 원삼국시대 유적으로 보고되었지만 실제 삼국시대에 해당된다.
삼국시대 유구 이외에도 조선시대 무덤 2기가 조사되었는데 청동숟가락, 옹기편, 관정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서천 송내리유적』(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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