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상(河有祥)이 쓴 장막희곡. 1964년에 발표하였다. 하유상은 6·25전쟁 이후 신구세대간의 갈등을 주로 작품화하는 한편, 향토성 짙은 희곡도 여러 편 썼다. 이 희곡은 충청도의 한 몰락 양반 집안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극화하였기 때문에 세대간의 괴리와 향토성을 융화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유상이 작의(作意:작품 설명)에서 ‘자식들을 마음 속으로는 몹시 사랑하면서도, 겉으로는 나무람으로 표현하는 한국적인 우리들의 아버지’를 그려보고 싶다고 실토한 점에서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몰락 양반인 김노인은 족보와 신분을 중시하는 전형적 구세대이다. 따라서 봉건유습을 거부하고 현대 감각과 윤리를 내세우는 자녀들과 혼인문제로 대립할 수 밖에 없다.
가령 아들이 미천한 가문의 신식여성과 혼인하려는 것을 반대하고, 딸 또한 비슷한 경우로 해서 아버지를 등지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파탄지경에 이르자 비로소 김노인은 자녀들을 용서하면서 죽어간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학 외다리로 서다>는 신구세대간의 갈등 속에서 구세대가 몰락하고 신세대가 등장하는 가운데 부각되는 전통적인 아버지상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에서 구세대의 퇴조를 절망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상당한 여운을 남기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김노인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족보를 소각하는 대신 무덤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점에서 그러하다. 작가는 새로운 윤리와 가치관을 인정하면서도 족보를 자신이 품음으로써 후세의 정신적 가치로 남도록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전라도와 충청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한 이 작품은 전통적인 풍정을 물씬 풍긴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70년대에 쓴 <꽃상여>·<은장도> 등의 실마리를 만든 토속적 희곡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