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손극장(孫克章)·손병헌(孫炳憲)·독고욱(獨孤旭)·이천민(李天民:世永) 등이 인근 각처의 청년들을 다수 망라하여 7월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
본부를 환인현(桓仁縣)마권자(馬圈子)에 두고 각처에 지부를 두었다. 간부로는 특무부장 이천민, 서무부장 손병헌, 재무부장 윤세용(尹世茸), 검무부장 독고 욱, 청년부장 사병희(史秉熙), 외무위원 김창천(金蒼天)이었다.
일제의 침략기관을 습격, 파괴하는 한편, 일제의 주구를 적발, 숙청하여 남만주 일대에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적의 앞잡이 홍승국(洪承國)과 별명이 백토벌(白討伐)이라는 자가 만주토군(滿洲土軍)과 결탁하여 독립운동가를 검거 혹은 살해하는 등 악질행패가 빈번하자, 백토벌을 사살하고 홍승국 등 이적행위자들을 설득시켜 귀국하도록 하였다.
1922년에는 대한통의부 결성에 참여하여 여기에 흡수되었는데, 이천민은 참모부장에, 독고 욱·윤세용·손병헌은 참모로 활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