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연극현장에서보다는 대학 강단에서 주로 활동하였던 연극인이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에서 셰익스피어와 영미 희곡을 주로 공부하였다. 대학 졸업 직후 중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는 한편, 극작과 연출에 간간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1943년에 극단 성군(星群)에 참여하여 처음으로 「신곡제」(김건(金健) 작)라는 작품을 연출하여 연극 경연대회에 참가한 데 이어, 1945년에도 「달밤에 깃든 산길」(송영(宋影) 작)을 연출하여 연극 경연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연출가보다는 극작가이기를 고집하였는데, 1934년 월간 『신동아』에 단막극 「어머니」를 발표함으로써 일찍이 극작가로 입문한 바 있었다. 따라서 광복 이후에는 대학의 영문학 교수로서 셰익스피어와 영미희곡론을 강의하면서 희곡창작과 번역에 주력하였다.
작품 수가 적긴 하여도 죽기 전까지 꾸준히 발표하였는데, 광복 직후에 무대에 올려진 장막극 「전원비곡(田園悲曲)」을 비롯해서 「청홍소동」·「교류」·「전유화」·「신바람」·「초립동」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창작과 함께 각색과 셰익스피어 번역에도 주력하여 「여성전선」·「자유부인」·「금삼의 피」등을 각색하였고, 「햄릿」·「리어왕」·「오셀로」 등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그리스 비극의 영향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정통적인 극술을 구사한 것이 특징이다.
비록 부산대학교를 비롯한 동아대학교·국제대학 등 교직에 봉직하였지만, 연극계의 이면에서 도움을 적잖이 준 연극인이다. 즉, 극단 신협이 피난시절에 크게 활약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원인 중에 한노단의 후원은 무시 못할 것이다.
영문학자로서 희곡이론에도 밝아 『희곡론』(1973)이라는 저서를 내놓은 바 있다. 프라이타크의 『희곡의 기술』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이는 이 저서는 신극사상 최초의 본격 희곡개론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