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금산(錦山). 경상남도 밀양 출신. 국권이 일본에게 침탈당하고 일제의 무단정치가 극악해짐에 따라 만주의 길림성(吉林省)으로 망명하여 김원봉(金元鳳)·황상규(黃尙奎)·이종암(李鍾岩) 등을 만나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의,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였다.
1920년 밀양폭탄사건을 주도하기 위하여 밀양에 왔다가 거사가 사전에 발각되자 다시 만주로 들어가 군자금 모금과 무기 구입, 그리고 단원의 확장에 주력하였다. 다시 항일거사를 주도하기 위하여 당시 중국 안동(安東)에 있던 이륭양행(怡隆洋行) 지하창고에 보관 중이던 고성능 폭탄 36개와 권총 5자루, 혁명선언서 600여 매 등을 국내로 반입하고 1진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의 밀정으로 의열단에 잠입하여 있던 김모라는 자의 밀고로 1진의 김시현(金始顯)·황옥(黃鈺) 등이 모두 검거되었고, 2진으로 계획되었던 이병희(李炳熙)와 함께 안동으로 돌아왔다.
1926년 12월 8일에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羅錫疇)를 위하여 폭탄 3개와 권총 7정, 실탄 490발을 웨이하이웨이[威海衛]까지 김창숙(金昌淑)과 함께 옮겨주었다. 그 뒤 국내에서의 의열단사건에 계속 관계하면서 독립운동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