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동기는 다음과 같다. 1904년 이후 일본이 한국 내정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이루어진 일본인 재정고문이었던 메가타(目賀田種太郎)의 화폐개혁정책은 한국의 금융계 또는 상업계에 큰 경제공황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도산하는 금융기관 및 상사(商社)가 속출했으며 이를 계기로 이들 민족계 은행 및 상사를 일본인 혹은 1905년 이후에는 통감부의 지배 하에 예속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내정 간섭에 의한 한국 상권의 노골적인 침탈에 대해 민족계 상인은 단결로써 대응하였다.
그리하여 1905년 7월에 객주조합이 모체가 되어 한성에 거주하는 상인들이 가세하면서 강력한 민족상인단체의 결성을 기도해 이 단체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 해 7월에 열린 창립총회에서 의장에는 당시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의 감사로 있던 김기영(金基永)과 부의장에는 이군필(李君弼) 등 임원 21명을 선정하였다.
초기에 이 단체는 민족상업계를 금융공황으로부터 구제해내기 위해 주력하였다. 금융공황의 구제책을 정부 및 사회 각층에 호소했으며, 동시에 자체적인 대책으로 1906년 초부터 상업은행(商業銀行)의 창립을 준비하였다.
1909년에 들어서 이 단체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져 기관지 『상공월보(商工月報)』의 간행을 통해 국내외의 경제동향에 관한 정보를 상업인에게 알려주었다. 또한 논설을 통해 새로운 상업 및 경제 지식의 보급에 노력하였다. 이 『상공월보』는 국내에서 간행된 최초의 상업전문지(商業專門誌)로 한말의 실업계를 계몽한 공적이 매우 컸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한국이 강점되면서 이러한 활동은 위축되었고, 조선총독부가 1915년 7월에 「조선상업회의소령(朝鮮商業會議所令)」을 공포하고 조선인상업회의소와 일본인상업회의소를 통합함으로써 이 단체는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