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량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승지, 공조참의,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상오(相五)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723년(경종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여주목사로|승지|공조참의|함경도관찰사
  • 출생 연도1653년(효종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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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공조참의,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상오(相五). 한박(韓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중영(韓重英)이고, 아버지는 서령(署令) 한익창(韓翊昌)이며, 어머니는 홍시립(洪時立)의 딸이다. 1699년(숙종 25) 직장(直長)으로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1713년 중국사신이 되돌아갈 때 평양에 머무르면서 대접소홀을 문제삼아 행패를 부리자 중로문안사로 나갔으며, 이듬해 승지가 되었다. 그 뒤 계속하여 왕의 측근에서 승지로 왕을 보필하였다.

1718년 여주목사로 나갔는데, 이때 사헌부로부터 재물을 탐한다는 탄핵을 받았으나 왕의 비호로 무사하였다. 이듬해 다시 승지가 되어 중앙으로 돌아온 뒤 1721년(경종 1) 분병조참의가 되었다.

이 해 노론이 왕세제(王世弟: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주장하자 소론 조태구(趙泰耉)·유봉휘(柳鳳輝) 등과 이를 극력 반대하였다. 그는 이 일로 노론의 강력한 반발을 받아 절도에 위리안치하라는 대간들의 탄핵이 있었으나 왕의 비호로 무사하였다. 이 해 공조참의가 된 뒤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재임 중 임지에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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