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계미(韓繼美)이며, 어머니는 윤번(尹璠)의 딸로,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여동생이다.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9년(세조 5) 음보로 전구서녹사(典廐署錄事)에 등용된 뒤 건원릉(健元陵)·문소전(文昭殿)의 직장(直長)을 거쳐, 사복시의 직장을 지냈다.
이어 판관·첨정·소윤이 되었다가 예종초에 병조참지·참판을 역임하고, 서원군(西原君)을 습봉(襲封)하였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형조참판·공조참판·한성부좌윤·첨지중추부사·부총관을 역임하였다.
1483년 정희왕후가 죽자 수릉관(守陵官)이 되었다. 성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왕실의 장례에 관한 일을 모두 맡아서 하였다. 글씨에 능하였다. 시호는 공도(恭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