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신보(合成新報)』라고도 불린다. 민족의식의 통합을 위하여 하와이의 24개의 모든 한인단체를 통합하여 1907년 9월 2일 조직된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가 같은해 10월 15일 기관지로 창간하였다.
초대회장은 임정수(林正洙), 주필은 김성권(金聲權)이었다. 처음에는 활자를 갖추지 못하여 등사판으로 간행하였으나, 이듬해 3월 5일부터 활판인쇄로 한글전용의 신문을 제작하였다.
이 신문은 한인합성협회의 설립취지인 ‘조국의 국권회복과 재류동포의 안녕보장과 교육장려’에 따라 민족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그 지면을 통하여 자주독립정신을 고취하고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였다.
국내에도 많이 유입되어 읽혀졌으며, 이에 대하여 일제 통감부는 그 격렬한 항일논조를 두려워하여 이른바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 제34조를 내세워 발매·배포를 금지하고 압수하였다.
당시의 관보(官報)에 의하면 1908년 4월부터 12월까지 국내에서 이 신문이 11회에 걸쳐 542부나 압수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1909년에도 제28∼31호까지 압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1909년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한인합성협회가 통합되어 국민회로 이름을 바꾸자, 제호를 『신한국보(新韓國報)』로 바꾸게 되어 1909년 1월 25일자(제60호)로 종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