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래부사, 승지, 강원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10년 장령이 되었고, 1712년 오수원사건(吳遂元事件)을 소론(疏論)했으며, 이듬 해에는 유혁연사건(柳赫然事件)을 임금에게 자세히 아뢰었다.
같은 해 7월 헌납(獻納)이 되었고, 사은사의 정사 임창군 혼(臨昌君焜), 부사 권상유(權尙游)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 해 돌아온 뒤 논사소(論事疏)를 올려 북막평사(北幕評事)의 임명을 신중히 할 것을 간하였다.
1715년 보덕이 되었고, 이듬 해 동래부사로 있으면서 대마도에서 요구한 인삼 무역을 왕에게 보고해 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이듬 해 경상어사 이명언(李明彦)의 복명에 따라 행정실책으로 문책을 당해 파출되었다.
같은 해 일본통신사에게 주어 보내는 문서의 문자 표시 문제를 해결했고, 1718년 승지가 되었다. 이듬 해 승지로 동궁에 입대(入對)해 세자의 감정 통제에 대해 진달하였다.
1720년 숙종국상에 정재륜(鄭載崙)이 성기(省記: 병조에서 입직하는 낭청이 매일 궁궐을 경비하는 장수에게 교부하는 군호와 궁궐 각처에 입직하는 관원·하례 및 각 군영에 입직하는 장수들의 이름을 써서 승정원을 거쳐 왕에게 올리는 서면) 없이 숙직을 하자 세자(뒤의 경종)에게 문책하도록 상소하였다.
1721년(경종 1) 11월 강원감사를 지냈고, 이듬 해 김동필(金東弼)의 상소에 김일경(金一鏡)의 일로 논란이 있다가 1723년 11월 간원(諫院)의 탄핵을 받았다. 곧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파직을 당한 뒤 고향에 돌아가 졸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지수재집(知守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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