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수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중군총제, 판공안부사,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안원군(安原君), 장수(長壽), 한창수(韓昌守)
  • 시호양정(良靖)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변(安邊)
  • 사망 연도1440년(세종 2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경기좌도절제사|중군총제|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지돈녕부사
  • 출생 연도1365년(공민왕 1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수홍 (경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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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중군총제, 판공안부사,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안변(安邊). 초명은 장수(長壽). 아버지는 안천부원군(安川府院君) 한경(韓卿)이며, 어머니는 증문하시랑찬성사(贈門下侍郎贊成事) 신원려(申元麗)의 딸이다.

태조비 신의왕후(神懿王后)의 동생이다. 1402년(태종 2) 총제(摠制)로 외갑사(外甲士) 500명을 지휘하고 1405년 안원군(安原君)에 책봉되었다. 1408년 내금위절제사(內禁衛節制使)가 되고, 이듬해 경기좌도절제사를 거쳐 1412년 중군총제를 역임하였다.

1415년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이어 지돈녕부사가 되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1421년(세종 3) 판중군도총제부사가 되고 이듬해 흠문기거사(欽問起居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후 여러 차례 사신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다.

또 명나라 사절을 맞이하기 위한 선위사(宣慰使)·원접사(遠接使)로 빈번히 활동하였다. 1428년 판돈녕부사가 되고 1436년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선원계보(璿源系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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