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김장생의 문인으로, 충절과 효행이 뛰어나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에 기록된 효자.
이칭
  • 군거(君擧)
  • 은탄(隱灘)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713년(숙종 39) 10월 21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644년(인조 22)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세은 ((前)
  • 최종수정 2022년 11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한치상은 조선 후기, 김장생의 문인으로, 충절과 효행이 뛰어나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에 기록된 효자이다. 전라도 남원에 거주하였던 학자이자 문인이다. 현종 대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김장생의 문묘 종사를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성리학을 강학하고 장려하며, 어버이 봉양과 효도를 다하여 효자로 칭송을 받았다.

정의

조선 후기, 김장생의 문인으로, 충절과 효행이 뛰어나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에 기록된 효자.

가계 및 인적 사항

한치상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군거(君擧), 호는 은탄(隱灘)이다. 전라도 남원(南原)에서 거주하였다. 아버지는 생원 한경오(韓儆吾)이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무반(武班)으로서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충성을 받친 공으로, 1455년(세조 1)에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으로 책록된 안양공(安襄公) 한종손(韓終孫)의 후손이다. 청주 한씨 종회 자료에 따르면 1644년(인조 22)에 태어났으며 1713년(숙종 39) 10월 21일에 세상을 떠났다.

주요 활동

1669년(현종 10)에 26세의 나이로 식년(式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그 뒤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문묘(文廟) 종사(從祀)를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반면, 흉악한 무리들이 함부로 세운 사우(祠宇)는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김장생의 문묘 종사는 1688년(숙종 14)에 이르러 성사되었다. 성품이 순후하고 독실하였고, 성리학을 강학(講學)하고 장려하였으며, 어버이를 봉양하고 뜻을 받드는 데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는 칭송을 받았다. 호남 지방의 충절과 효행 등에 관한 기록을 모아 편찬한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에 효자로 이름이 올라 있다.

당시 김장생의 문인들은 충청도 논산의 연산(連山) 지역에 돈암사(遯巖祠)를 세우고 스승의 위패를 모셔 놓았는데, 현종 대에 사액(賜額)을 받아 돈암서원(遯巖書院)이 되었다. 돈암서원은 고종 대에 들어 서원 철폐를 대대적으로 시행할 때에도 충청도의 대표적인 사액서원으로 보존되었다. 현재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 그리고 송준길송시열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고,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 원전

  • - 『기유식년사마방목(己酉式年司馬榜目)』

  •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 인터넷 자료

  • - 향토문화전자대전(http://www.grandculture.net)

  • - 청주한씨 장헌공파종친회(http://www.jh-han.com)

주석

  • 주1

    : 조선 세조의 즉위하기 전의 군호(君號). 우리말샘

  • 주2

    : 자(子), 묘(卯), 오(午), 유(酉) 따위의 간지(干支)가 들어 있는 해. 3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데, 이해에 과거를 실시하거나 호적을 조사하였다. 우리말샘

  • 주3

    :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 초시와 복시가 있었다. 우리말샘

  • 주4

    : 학문을 닦고 연구함. 우리말샘

  • 주5

    : 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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