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판본. 1619년(광해군 11) 판각(板刻)에 착수, 1621년에 완성하여, 1625년(인조 3)에 발행, 광포(廣布)하였다.
1773년(영조 49) 처음으로 안방준의 ≪은봉집 隱峰集≫이 나온 뒤, 1864년(고종 1) 유림(儒林)과 후손들이 다시 유묵(遺墨)과 자료를 모아 ≪은봉전서 隱峰全書≫로 개제(改題)하였다. 이어 본집 38권, 속집(續集) 2권, 신간부록 4권을 포함, 모두 44권 21책으로 신간본을 발행할 때 본집(35권∼38권)에 포함시켰다.
권1에는 왜사(倭使)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강력한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조헌의 청절왜사제1봉사(請絶倭使第一封事)와 제2봉사·제3봉사를 실었다.
권2에는 왜사를 참수하라는 내용으로 청참왜사제1봉사(請斬倭使第一封事)·제2봉사와 함께, 의주변황조표(擬奏變皇朝表)·의여유구국왕서(擬與琉球國王書)·의유일본국유민부로등서(擬諭日本國遺民父老等書)·의유대마도유민부로등서(擬諭對馬島遺民父老等書)·의참적사현소등죄목(擬斬賊使玄蘇等罪目)·영호비왜지책(嶺湖備倭之策)·여연안부사신공각서(與延安府使申公恪書)·여금산군수김공현성서(與錦山郡守金公玄成書)·여형조판서이공증서(與刑曹判書李公增書) 등이 게재되었다.
권3에는 기병후봉사(起兵後封事)·청주파적후장계별지(淸州破賊後狀啓別紙)·근왕시지로문(勤王時指路文)·여수군절도사서(與水軍節度使書)·답고산현감서(答高山縣監書)·여순찰사서(與巡察使書) 등을 실었다.
권4에는 윤근수(尹根壽)가 찬한 조참판일군순의비(趙參判一軍殉義碑), 안방준의 중봉선생유사(重峰先生遺事), 증직교서(贈職敎書), 권필(權韠)의 중봉선생봉사후발(重峰先生封事後跋), 성문준(成文濬)의 서중봉선생거의시사후(書重峰先生擧義時事後), 정철(鄭澈)의 제조여식문(祭趙汝式文), 민욱(閔昱)의 금산입비시제선생문(錦山立碑時祭先生文), 이정암(李廷馣)의 애조여식(哀趙汝式), 권필의 만중봉선생(挽重峰先生)과 영중봉선생(詠重峰先生), 유조인(柳祖訒)의 차이대중운만조여식(次李大仲韻挽趙汝式) 등의 글을 실었다.
내용상 권1·2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이 침입할 것을 확신하고 굳건한 자세로 이에 대비하자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권3에는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르면서 대책을 강구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권4에는 의병 활동을 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조헌에 대해 애도한 글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책머리에는 화수(畫手) 이징(李澄)이 그린 궁경양친도(躬耕養親圖)·빈례사노도(賓禮師奴圖)·지부복궐도(持斧伏闕圖)·도보과령도(徒步過嶺圖)·청참왜사도(請斬倭使圖)·청주파적도(淸州破賊圖)·금산사절도(錦山死節圖)·칠백의총도(七百義塚圖) 등 8도(圖)를 붙여 조헌의 일생을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1614년에 쓴 이정구(李廷龜)의 서(序)와, 편자 안방준의 서(書)가 있다. 이 책은 임진왜란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