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유희해는 일찍이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8권을 저술하였으나, 이 책은 탁본(拓本)을 근거로 기록한 것으로, 여기에 없는 것을 따로 엮어 ‘해동금석존고’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다시 여기에서 빠진 17비(碑)의 이름을 덧붙여 『해동금석대방목록(海東金石待訪目錄)』이라 하였다. 유희해는 자를 연정(燕庭)·길보(吉甫)라 하였고, 산둥저성(山東諸城)의 명족(名族)으로 유용(劉墉)의 종손이다. 그는 홀로 금석(金石)·비각(碑刻)·관지(款識) 등을 즐겼으며, 벼슬은 절강포정사(浙江布政使)에 이르렀다.
조선사절로 수행하였던 조인영(趙寅永)과 사귀었고, 또 김정희(金正喜)와도 신교(神交 : 정신적으로 사귐.)를 맺기도 하였다. 그는 『금석원(金石苑)』 수백 권을 편찬하는 한편, 해외의 금석도 널리 모아 많은 조서(詔書)의 비판(碑版)과 고석(考釋)을 달아 『해동금석원』 8권을 편찬하고, 또 이 책 1권 및 『해동금석대방목록』을 덧붙여 한청문화교류에 공헌하였다.
『해동금석원』과 이 책의 저술에 있어 그 근거자료는 모두 김정희·조인영과의 교우관계를 통하여 수집되었다. 『해동금석존고』의 출간은 도광(道光) 12년(1832) 7월 진종이(陳宗彝)의 서문이 있어 같은 해이거나, 또는 ‘광서무자하덕화이씨간(光緖戊子夏德化李氏栞)’의 목기(木記)에 의한 간본(刊本)으로 보아 1888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소장본인 ‘서령인사취진판(西泠印社聚珍版)’은 『산음오씨돈암금석총서(山陰吳氏遯盦金石叢書)』 중의 하나로, 또 다른 판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령인사취진판 『해동금석존고』는 모두 30장으로 판심어미(版心魚尾)에는 ‘海攷(해고)’라 적혀 있으며, 판의 크기는 가로 12㎝, 세로 17㎝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