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0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민족계 은행.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그러나 7월에 중역진 대부분이 사임하였으며, 이러한 양측의 의견 불일치와 1920년 중반 이후 시작된 불경기 등으로 장기간 영업 부진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 뒤 1923년 7월에 가서 실질적으로 상인 계층이 운영 실권을 장악하였다.
1925년 10월 경성방직주식회사의 취체역이며 호남의 실력자인 조설현(曺偰鉉)이 전무 취체역에 취임함으로써 상공인 계층의 은행 운영의 실권은 더욱 공고해졌다.
1926년 7월 명목상 은행장이던 윤덕영이 사임하고, 경성방직주식회사의 전무인 김연수(金䄵洙)가 은행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결과 명목상 남아있던 귀족 세력은 완전히 물러나고, 김연수를 중심으로 하는 호남 재벌이 은행의 운영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 시기에 불입 자본은 50만원에서 80만원으로 증자하였고, 건실한 운영을 지속하여 1934년에는 황해도 해주에 지점을 개설하는 등 착실하고 번영하는 은행으로 세간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민족계 은행합병정책의 강행으로 1938년 1월 은행 업무를 한성은행에 양도하였고, 해동은행은 해동금융주식회사로 남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금융사연구(韓國金融史硏究)』(고승제, 일주각,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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