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모량부(牟梁部) 사람이다. 가잠성(椵岑城 : 지금의 竹山) 현령이었던 찬덕(讚德)의 아들이다. 가잠성전투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덕으로 20여 세에 대나마(大奈麻)에 올랐다.
신라는 백제에 빼앗겼던 가잠성을 되찾기 위하여 618년 한산주군주(漢山州軍主)인 변품(邊品)을 보내어 공격하도록 하였는데, 이 때 금산(金山 :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 당주(幢主)로서 참전하였다.
아버지가 가잠성에서 전사한 사실을 상기하고는, 자기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백제군과 싸우다 죽을 것을 각오하고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하였다. 신라군은 이 때 결국 가잠성을 탈환하였다. 진평왕은 이를 듣고 감복하여 그 가족에게 후하게 상을 베풀었으며,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장가(長歌)를 지어 조위(弔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