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제주의 관헌에서 해상의 안전운항을 기원하던 사당으로 화북동 선창 곁에 있다. 화북동 선창은 조선시대 제주목의 관문인 선창으로 이용되어 모든 관원이 본토와 내왕할 때 이곳을 거쳤으므로 여기에 세워진 것이다.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어서 본토와 내왕할 때 해상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어서 해신제를 지낸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1792년(정조 16) 제주에 큰 흉년이 들어 목사 이철운(李喆運)이 조정에 구휼(救恤: 나라에서 물품을 베풀어 백성의 곤궁을 구레함)을 요청하자, 곡물을 나르기 위하여 어리(중앙 관리)를 보내면 민폐가 될 것이니 수령 가운데 수송할 사람을 정하여 운송하라 하고 해신제 제문을 지어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관헌에서 해신제를 지내 왔음을 알 수 있다.
해신사는 1820년(순조 20) 목사 한상묵(韓象默)이 처음 세운 것으로, 1841년(헌종 7) 방어사 이원조(李源祚)가 건물을 중수하고, 1849년 방어사 장인식(張寅植)이 ‘해신지위(海神之位)’라는 위패를 돌에 새겨 안치하였다. 해마다 정월보름과 선박이 출범하기 전에 관헌에서 해신제를 지내어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여 왔는데, 민족항일기초에 관헌의 제의가 폐지되었다.
현재의 사당 건물은 1975년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운 것으로 건물의 넓이는 1칸이며, 지붕은 한식 기와로 덮고, 바닥은 강화다짐을 하였다. 현재 해신제는 민간의 개별제의로 되어 매년 음력 섣달그믐, 7월 백중날, 8월 14일에 화북동 어부들이 각각 제물을 따로 차려와서 진설하고 해상안전과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 한편, 무속에서는 여기의 신을 ‘금돈지 해신영감님·해신부인님’이라 하여 해상안전을 수호하는 신으로 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