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안찰사는 6개월의 임기와 행정적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관서가 필요하였는데, 이것이 곧 행영이다. 안찰사는 부임하면 일단 본영에 도착한 후 도내를 순행하고 다시 환영하여 6삭 동안 본영에서 행정사무를 보는 것이 통례였다.
안찰사영에는 영고(營庫)가 있고 영리(營吏)와 정리(丁吏)가 있었다. 또 안찰사영에는 염창(鹽倉)을 두게 하고 있다. 안찰사영 중에서는 경상도의 안찰사영이 가장 으뜸이었다고 한다. 안찰사영은 충선왕 때에는 제찰사(提察司)로도 불렸다.
안찰사영이 어디에 설치되고 있었느냐에 대하여는 명확한 기록이 없어 분명치 않으나 대체로 도내에서 가장 큰 주목인 도명의 첫 자(字)의 주부(경상도는 경주, 전라도는 전주 등)에 있었던 것 같다. 강릉도존무사가 명주에서 등주로 옮겨졌다는 것은 명확하지만, 다른 안찰사영의 소재는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