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굉지(宏之), 호는 징와(澄窩). 허비(許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손(許蓀)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허침(許琛)이며, 어머니는 유시(柳蒔)의 딸이다.
1492년(성종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03년(연산군 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에 등용되어 정자·지평으로 승직하였다. 그 뒤 이조정랑·사인·사간·직제학을 역임하고, 1515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대사간이 되었으며, 곧 대사헌이 되었다.
그 뒤 평안·경기·함경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524년 함경도관찰사 재직시 조윤손(曺潤孫)이 여연·무창에 잠입한 야인(野人)을 정벌할 때에 그를 도와 큰 공을 세웠다.
그해에 예조판서로 승직되고 1528년 우찬성이 되었다. 이때에 서쪽 변방의 야인들이 빈번히 국경을 침입, 소란을 피우자 순변사(巡邊使)가 되어 그들을 평정하고 돌아왔다. 평안도관찰사로 재직 중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