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본은 현전하지 않으며, 중간본 36권 8책의 목활자본이 현재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중간본 외에는 저본을 알 수 없는 필사본 8책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고, 고려대학교 만송문고에 목판본 시집 1책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목판본 문집 1책이 각각 소장되어 있다. 목판본은 모두 영본(零本)이다.
성현(成俔, 14391504)의 문집 초간본은 그 아들 성세창(成世昌, 14811548)이 편집하여 간행하였으나 산일되어 없어졌다. 정조 · 순조 연간에 후손 성천주(成天柱)가 비서감 소장의 구본(舊本)을 발견하고 이를 필사하여 소장하였다. 이후 그 후손들의 등사와 교정을 거쳐 12대손 성재항(成載恒) 등이 1842년에 나주에서 목활자로 36권 8책의 중간본을 간행하였다.
중간본 36권의 구성은 시집(詩集) 14권, 보집(補集) 5권, 풍아록(風雅錄) 2권, 습유(拾遺) 1권, 문집(文集) 14권으로 되어 있고, 각 판은 9행 20자이다.
시집 14권에는 630여의 제목과 732수에 달하는 다양한 시체(詩體)가 지어진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수록되어 있다. 보집 5권도 200여 제목의 시문이 지은 순서에 따라 수록되어 있다. 풍아록 2권은 11개의 시 형식으로 구성된 가집(歌集)이다. 전체 119제의 작품이 문체별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권 1에는 가체(歌體) 9제, 행체(行體) 14제, 곡체(曲體) 10제, 음체(吟體) 5제, 사체(詞體) 13제, 요체(謠體) 5제, 편체(篇體) 7제가 수록되었으며, 권 2에는 인체(引體) 5제, 원체(怨體) 8제, 탄체(歎體) 6제, 악부 잡체(樂府雜體) 37제로 구성되어 있다. 습유(拾遺) 1권에는 35제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상 『허백당집』에 실린 시는 790여 편에 달한다.
문집 14권에는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산문(散文)들이 문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문집 권 1에는 8편의 부(賦)가 실려 있으며, 권 2에는 6편의 사(辭)가 수록되어 있다. 권 3에는 33편의 기(記), 권 6에는 26편의 서(序), 권 9에는 13편의 제발(題跋), 권 10과 11에는 6편의 논(論)이 수록되어 있다. 권 12에는 여러 문체가 함께 실려 있다. 권 13에는 자신을 대상으로 삼은 자전(自傳)을 포함한 3편의 전(傳)과 8편의 잡저(雜著)가 함께 실려 있고, 권 14에는 17편의 제문(祭文)이 수록되어 있다.
문집 뒤에는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이 서술한 「허백당 선생 문대 성공 행장(虛白堂先生文戴成公行狀)」이 실려 있고, 이어서 15세손 성재숭(成載崇)과 종후생(宗後生) 성근수(成近壽)가 지은 중간서(重刊序)가 실려 있다.
성현은 창화시나 율시(律詩)보다는 고시(古詩)와 악부시 계열의 장편(長篇)을 많이 남겼다. 그의 시편에는 일반 백성, 즉 하층민에 대한 관심이 느껴진다. 백성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 곡진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시 작품은 문학사에 있어 조선 전기 사대부 문인들의 애민시(愛民詩)의 전통을 이루는 것이다. 「맹호행(猛虎行)」, 「향곡즉사(鄕曲卽事)」, 「궁촌사(窮村詞)」, 「예맥행(刈麥行)」, 「잠부탄(蠶婦歎)」, 「과갈화리(過曷和里)」 등은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성현의 시편 가운데 또 눈에 띄는 것으로는 국가적 행사나 민간의 풍속을 기록한 작품들이다. 「관괴뢰잡희(觀傀儡雜戱)」, 「관나(觀儺)」, 「처용(處容)」, 「관화(觀火)」, 「제석(除夕)」, 「향반(香飯)」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