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78년 지평이 된 뒤, 병조정랑 · 지제교(知製敎) 등을 역임하였다. 1482년 진현시(進賢試)에 병과로 급제하고, 필선이 되어 세자의 그릇됨을 깨우치기에 노력하였다. 1488년 보덕이 되었다가 곧 홍문관직제학 겸 예문관응교로 옮겼다. 그리고 이듬해 『삼강행실』을 산정(刪定)하였다.
1490년 동부승지로 초수(超授)되었으며, 같은 해 좌부승지 · 우승지를 역임하였다. 1491년 좌승지, 1492년 전라도관찰사, 1493년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가 곧 대사헌으로 자리를 옮겼다. 1494년 예조참판이 되고,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런 뒤 1498년(연산군 4)까지 병조참판 · 경연특진관(經筵特進官) · 실록청당상 등을 역임했으나, 김일손(金馹孫)의 사초사건에 연루되어 첨지중추부사로 좌천되었다. 이어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1499년 동지중추부사로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영춘추관사 신승선(愼承善) 등과 함께 『성종실록』을 편찬하였다.
1500년 호조참판 · 이조참판을 거쳐, 이듬해 형조참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 경기도관찰사 · 이조판서를 거쳐, 1503년 우참찬이 되었다. 1504년 우의정 재직 당시 연산군의 생모 윤비(尹妃) 폐출(廢出)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처벌되는 가운데, 당시 할머니상으로 불참했던 덕에 화를 면하였다. 그 해 좌의정에 올랐다.
조위(曺偉) · 유호인(兪好仁) 등과 교우하면서 성종의 총애를 받았고, 연산군의 폭정을 바로잡지는 못했지만 많은 조신들을 구명하였다. 성종조의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성호문집(星湖文集)』
- 『모재집(慕齋集)』
- 『대동야승(大東野乘)』
- 『해동야언(海東野言)』
- 『용재총화(慵齋叢話)』
- 『한국성씨대관』(창조사, 1971)
- 『한국인의 족보』(일신각,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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