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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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병조참판,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계(子繼), 원지(元之)
사지당(仕止堂)
시호
장성(章成)
이칭
거창부원군(居昌府院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36년(세종 18)
사망 연도
1502년(연산군 8)
본관
거창(居昌)
주요 관직
이조참판|공조참판|병조참판|좌의정|영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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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참판,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자계(子繼) · 원지(元之), 호는 사지당(仕止堂). 판서 신인도(愼仁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이충(愼以衷)이고, 아버지는 황해도 관찰사 신전(愼詮)이다. 어머니는 안강(安剛)의 딸이다. 연산군의 장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54년(단종 2) 사마시에 급제하고 돈녕부승(敦寧府丞), 정랑 등을 거쳐 1466년(세조 12) 1월 당상관에 승진하면서 병조참지에 발탁되었다. 같은 해 3월 알성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뒤 병조참판에 승진, 그 해에 다시 발영시(拔英試)에 3등으로 급제하고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을 겸임하였다.

1467년 이조참판 겸 예문관제학, 공조참판, 1468년 다시 병조참판이 되었다. 1468년(예종 즉위년)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1471년(성종 2) 성종등위에 끼친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각각 녹훈되었다.

1472년 자헌대부(資憲大夫) 거창군(居昌君)이 되고, 1476년 4월∼8월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79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1481년 행동지돈녕부사(行同知敦寧府事)를 거쳐 공조판서에 이르렀으며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를 겸임하였다.

1484년 세자빈객(世子賓客)을 겸대, 1486년 병조판서 겸 특진관(兵曹判書兼特進官)이 되었다. 1487년 딸이 세자인 연산군의 빈(嬪)으로 뽑히자 그를 계기로 좌참찬, 1488년 한성부판윤, 1489년 예조판서, 1491년 사소대장(四所大將)을 겸대, 이어 이조판서가 되었다가 1492년 병으로 사직하였다.

1494년 우의정, 1495(연산군 1) 좌의정 · 영의정, 1497년 3월 거창부원군(居昌府院君)에 봉해졌다. 1495년 4월∼1499년 2월에 걸쳐 영춘추관사(領春秋館事)로서 『성종실록』의 편찬을 주관하였다. 세종의 4남인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의 딸과의 사이에서 신수근(愼守勤) · 신수겸(愼守謙) · 신수영(愼守英)을 두었다.

시호는 장성(章成)이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
『한국인의 족보』 (일신각,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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