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암문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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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인, 최소의 서(序) · 기 · 인 · 잡저 등을 수록한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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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인, 최소의 서(序) · 기 · 인 · 잡저 등을 수록한 문집.
내용

3권 1책. 필사본. 1868년(고종 5) 손자 성학(性學)이 유고를 정리하여 편집하였다.

≪형암문략≫의 권말에 있는 성학의 발문에서 저자는 평소 시짓기를 좋아하지 않고 ≪좌전 左傳≫·≪한서 漢書≫ 등을 즐겨 읽어 그 문장이 침웅(沈雄 ; 침착하며 뜻이 넓고 깊다)하여 후생이 미칠 바가 아니라고 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시는 전혀 없다.

≪형암문략≫의 권1은 분여고(焚餘藁)로 서(序) 2편, 기(記) 3편, 인(引) 1편, 제후(題後) 1편, 권2는 독사만론(讀史漫論), 권3은 잡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여고>는 본디 2권이었으나 7편만이 전한다.

<이군금강기서 李君金剛記序>와 <송인부연서 送人赴燕序>에서는 우리 나라 국토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송인부연서>는 중국의 역대 고사만 알고 본국의 치란과 정치사에 어두운 풍조를 개탄하고 있다.

기는 관왕묘(關王廟), 최치원(崔致遠)의 영당(影堂), 역산루(亦山樓) 등에 대한 것이다. <파초인 芭蕉引>은 부(賦)이다. <제음즐문후 題陰騭文後>는 음즐문(남에게 음덕을 베풀기를 권하는 글.)이 권선징악의 공이 있음을 밝힌 글이다.

<독사만론>은 원래 140여 편이었으나 20편만이 남아 있다. 이는 ≪좌전≫·≪사기 史記≫ 등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편 것이다.

<독사만론>의 내용은 제헌씨(帝軒氏)가 간과(干戈)를 만든 의미, 곤(鯀)의 치수(治水),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에게 노(魯)를 내리고 천자의 예악을 쓰게 한 일, 공자(孔子)가 양화(陽貨)와 비슷하게 생긴 문제, 맹자(孟子)의 무적국외환(無敵國外患)의 의미, 오상(伍尙)과 오원(伍員)의 현우(賢愚), 예양(豫讓)·장량(張良)·항우(項羽)·소하(蕭何)·가의(賈誼)·두광(竇廣)·소무(蘇武)·제갈량(諸葛亮)·곡단(曲端) 등의 역사인물론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독사만론>은 역사비평이다.

≪형암문략≫의 잡저는 역사 사건에 직접 뛰어들어 논리를 편 것이다. <대연태자단송형가입진서 代燕太子丹送荊軻入秦序>는 연태자 단을 대신하여 형가의 거사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소명윤(蘇明允)·모수(毛遂)·범수(范脽)·천리마(千里馬) 등을 대상으로 한 유사한 글 4편이 더 들어 있어 역사론의 또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농인고춘급설 農人告春及說>은 어느 농사꾼이 도잠(陶潛)이 귀거래(歸去來)한 의미를 우언으로 말한 것이다. <빙산기 氷山記>는 당나라 양국충(楊國忠)의 해악을 빙산과 관련시켜서 논의한 것이다.

<봉명기양송 鳳鳴岐陽頌>은 자신의 가숙(家塾)에서 공부하는 여덟살 먹은 학동이 기양에서 봉이 운 사실의 의미를 물은 것에 대한 답이다. 그밖에 송(頌) 1편, 명(銘) 4편, 찬(贊) 1편이 더 있다. 이들도 역사론과 일정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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