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신계(莘溪). 아버지는 참봉 홍우조(洪禹肇)이다.
1750년(영조 26) 우의정 정우량(鄭羽良)의 천거로 등용되어 1757년 왕손교부(王孫敎傅)가 되고, 이듬해 자의(諮議)가 되었다.
1759년 평안도도사로 나갔다가 곧 돌아와 지평을 거쳐 이듬해 집의로 승진하였으며, 1763년 세자시강원진선이 되었다. 이듬해 성격이 난폭하고 남의 비방을 일삼는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1768년 다시 진선에 기용되었다.
이 때 또 다른 풍산홍씨(豊山洪氏) 일파가 시파(時派)를 이루어 세손(世孫: 뒤의 정조)을 보호하려 하자 벽파(僻派) 홍인한(洪麟漢)과 더불어 세손의 즉위를 반대하였다가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하옥되어 옥사하였다. 아들 홍신해(洪信海)와 조카 홍이해(洪履海)도 모두 주살(誅殺)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