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376년(우왕 2) 7월, 최영(崔塋)이 홍산(鴻山,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
배경 및 발단
경과 및 결과
양측 군사가 교전한 곳은 3면이 모두 절벽이고 오직 길 하나만 통할 수 있는 험하고 좁은 지형이었다. 최영이 이끈 고려군이 당도하기에 앞서 왜구가 먼저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 장수들이 겁을 내어 나아가지 못하였는데, 최영이 선두에 나서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숲속에 숨어있던 적이 쏜 화살이 최영의 입술에 맞아 피가 흘렀는데도 최영은 당황하지 않고 적을 쏘아 맞춘 이후에야 화살을 뽑았다고 한다. 최영을 중심으로 한 고려군은 더욱 치열하게 싸워 적을 거의 섬멸하였다.
이어서 8월에 최영이 개경으로 개선하자 조정은 황제의 사신을 맞이하는 예와 같이 성대하게 이들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우왕은 최영을 철원 부원군(鐵原府院君)으로 봉하고 나머지 군사들도 포상하였다.
의의 및 평가
홍산 전투 이후 왜구들은 늘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는 백발(白髮)의 최만호(崔萬戶)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최영을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를 통해 왜구의 세력은 일시적이나마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홍산의 전투 장소로 비정되는 장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 있는 태봉산성(胎峰山城)이며, 산성 내부에 조성되어 있는 태봉산 체육공원에 홍산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한편 최근에는 홍산 전투의 전장이 태봉산이 아니라 비홍산(飛鴻山)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상기, 『(한국전사) 고려시대사』(동국문화사, 1961)
- 이영, 『잊혀진 전쟁 왜구: 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에피스테메, 2007)
논문
- 손홍열, 「고려말기의 왜구」(『사학지』 9, 단국사학회, 1975)
- 이영, 「홍산·진포·황산 대첩의 역사지리학적 고찰」(『일본역사연구』 15, 일본사학회, 2002)
- 임형수, 「1376년 홍산 전투의 의의와 전장에 대한 재고찰」(『군사』 98,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6)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