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청중(淸仲), 호는 현암(玄巖). 현(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처관(處寬)이고, 아버지는 유규(有圭)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기천(起天)의 딸이다.
1765년(영조 41) 사마시에 합격한 뒤 채제공(蔡濟恭)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774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가 되었고, 그 뒤 홍문관의 저작·박사 등을 거쳐 1782년(정조 6) 성균관전적·시강원설서, 이듬해 온릉영(溫陵令), 다음해 예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병조좌랑을 지내고, 1798년 사간원정언이 되어 과거의 폐해를 상소하였다. 그 해 사헌부지평 겸 기사관(記事官)으로 『규장전운(奎章全韻)』을 교열하였고, 또 기주관(記注官)이 되어 『영조실록』 편수에 참여하였다.
1799년 장령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으며, 임금의 간청으로 일시 경연에서 『논어』를 시강(侍講)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현암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