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5월 1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1949년 4월 당시 원 위치인 희망리홍천초등학교 뒤편 희망리 311-4에서 교육청으로 이전되었고 1957년 6월 15일 다시 현 위치인 읍사무소로 이전되었다. 2000년에 석탑 주변정비, 2012년 보존처리공사를 하였다.
1942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의하면 당시 홍천읍 서부 일대에는 사찰명을 알 수는 없으나, 큰 사찰의 흔적이 있었다고 하며 형상과 층수를 알 수 없는 도괴된 방형탑 1기와 3층의 방형탑 2기가 훼손된 채 남아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양식상 고려시대 중 · 후반기에 조성된 탑은 폐허가 된 사찰지에 남아 있다가 1949년 원 위치에서 이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45년 이전까지는 언젠가 활터로 옮겨졌다는 비석과 함께 기단 면석 이하가 땅 속에 묻혀 있고 삼층탑의 3층 옥개석이 없어진 당시 모습이 『국보도록』에 남아 있다. 6 · 25 전쟁 당시 무너져 1956년 11월에 복구하였으며 홍천군의 관리 하에 2000년의 정비와 2012년의 보존처리를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륜부와 3층 탑신석이 유실된 일반형 삼층 석탑이다. 지대석은 새 부재가 일부 보충된 4매의 장대석으로 조성되었다. 기단부에서 단층으로 2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진 하대석은 위에 약간의 경사를 주었으며 중앙에 1단의 얕은 괴임을 두어 면석을 받치고 있다. 면석은 4매의 판석으로 결구되었는데 2매의 판석을 세운 뒤 2매의 판석을 사이에 감입하여 2면은 우주와 탱주를 모각하였으며 2면은 양면의 측면을 우주로 삼고 탱주만 모각하였다. 널찍한 갑석은 하단에 내만된 경사로 표현된 1단의 괴임이 있으며 윗면에도 경사와 합각이 표현되어 있다. 중앙에 약간 높은 3단의 얕은 괴임과 초층 탑신이 한 돌로 조성되어 있다.
탑신은 초층이 기단 갑석과 한 돌이며 2층 탑신은 초층 옥개석과 한 돌로 만들어져 있다. 옥개석은 층급이 초층은 4단, 2, 3층은 3단이며 추녀는 양단이 살짝 반전하고 있다. 각 옥개석 상단에는 1단의 낮은 괴임이 조출되어 있으며 2, 3층은 괴임과 낮은 1단이 더 조성되어 있다. 2층 탑신 높이는 초층에 비해 크게 감축되어 있으며 폭은 밑변은 동일하나, 2층 탑신의 폭이 상단으로 갈수록 경사로 줄어들고 있다. 2, 3층 옥개석 상단 괴임부는 처마와 같이 반전을 표시하고 있어 지붕의 굴곡을 함께 표시하고 있다. 2층 탑신과 3층 옥개석은 별석으로 조성된 듯 현재 3층 탑신은 유실되고 3층 옥개석만 남아 있다.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으며 3층 옥개석 상부에 방형의 찰주공이 조성되어 있다.
원 위치의 모습은 기단 면석 이하가 묻혀 있고 3층 옥개석이 이상이 없었으나 여러 차례 이전, 도괴, 보수를 통한 현재의 모습은 단층 기단에 3층 탑신이 없는 상태이다. 기단부와 탑신부의 일부가 어느 정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가 크게 감축되어 있고 탑신의 하단이 상단에 비해 좁아지고 있다. 아래층 옥개석과 위층 탑신석이 1매로 조성되었으며 옥개석 상단에는 지붕의 반전이 표현되어 있다.
탑신부 비중의 약화, 경사지게 감축되는 2층 탑신, 옥개석 상단의 지붕 반곡, 상, 하층의 옥개석과 탑신석의 1매 조성 등은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양식으로, 고려 중, 후기 조성되는 석탑의 지방적 전개 양상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