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대곡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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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대곡리 유적 출토 청동기
화순 대곡리 유적 출토 청동기
선사문화
유적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에 있는 철기시대 청동유물 동검 · 정문경 등이 출토된 돌무지나무널무덤. 적석목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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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에 있는 철기시대 청동유물 동검 · 정문경 등이 출토된 돌무지나무널무덤. 적석목관묘.
개설

남동쪽에 위치한 해발 258.2m인 비봉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끝자락에 좁고 길게 돌출되어 있는 곳에 유적이 위치한다. 1971년 8월 민가의 창고 배수로를 만들면서 우연히 발견된 청동유물 11점이 전라남도 문화공보실에 신고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내용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는 1971년 12월 24일 유물이 발견된 장소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매장유구를 확인하였다. 그 후 대곡리 청동유물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 인정받아 1972년 3월 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국보로 지정된 것은 동검(銅劍) 3점, 동부(銅斧) 1점, 동사(銅鍦) 1점, 정문경(精文鏡) 2점, 쌍두령(雙頭鈴) 2점 등 총 11점이다.

그 후 국립광주박물관은 2008년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대곡리 청동유물 출토지점의 정밀 재조사를 실시하였다. 매장유구의 성격이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임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목관과 묘광 사이에서 동검 2점을 새롭게 수습하였다.

매장주체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장축방향은 등고선에 직교하며 2단으로 굴착되었다. 묘광의 규모는 장축 330㎝, 단축 280㎝이다. 묘광선 확인 과정에서 할석이 노출되었는데 매장유구의 적석부이다. 적석부는 폭 90㎝ 내외의 1단 굴광면에 할석을 3~4단으로 쌓았으며 적석부의 높이는 45㎝이다. 할석의 크기는 대략 20~50㎝이다.

1차 묘광 아래에서 2단 굴광이 확인되었는데 규모는 장축 233㎝, 단축 90~98㎝, 깊이 79㎝인데 묘광 바닥의 규모는 장축 201㎝, 단축 66~71㎝이다. 묘광 바닥 일부에는 회백색점토가 약 4㎝ 두께로 깔려 있었다. 무덤 축조 당시에는 이 회백색점토가 바닥 전면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회백색점토는 묘광 바닥으로부터 최대 30㎝의 높이까지 ‘U’자형으로 확인된다. 또 점토의 상면에는 목질흔적과 함께 일부 탄화된 목질이 남아 있었다. 회백색점토의 단면이 ‘U’자형인 것으로 볼 때 통나무관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벽면에서는 새롭게 동검 2점이 겹쳐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동검은 통나무관 아래 빈 공간에 놓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요갱은 확인되지 않았다. 아래쪽 묘광 양쪽 벽에는 1971년 조사된 회백색점토와 할석이 2~3개씩 확인되었다. 이 할석들은 묘광 바닥에 ‘U’자형의 통나무관을 안치한 후, 관의 움직임을 고정하기 위해 관의 좌우에 끼우거나 받친 채움돌로 추정된다. 그 후 통나무관과 묘광의 양벽 틈새에는 모래가 포함된 황갈색을 띠는 흙을 채워 넣었다.

1971년 조사에서 발견자가 유구를 훼손하면서 길이 85㎝, 폭 32㎝, 두께 4㎝의 목관재(木棺材)가 수습되었다. 수종분석 결과 동아시아지역에만 분포하는 굴피나무로 밝혀졌다.

동검은 두 차례의 조사에서 모두 5점이 출토되었다. 모두 자루와 검신을 별도로 제작하고 결합하여 사용하는 소위 한국식동검(세형동검)이다. 동검의 길이는 최대 32.7㎝, 최소 24.7㎝이며 한 점은 마연되지 않았는데 길이가 29.3㎝로 주조 후의 동검의 길이를 말해준다.

대곡리유적 출토 동부는 어깨가 발달된 것으로 유견동부(有肩銅斧)이다. 길이는 7.6㎝, 최대폭 4.3㎝, 두께 1.7㎝이다. 유견동부는 대부분 공부에서 다수의 돌대가 확인되는데 대곡리 출토품은 4조의 돌대가 형성되어 있고 날의 각도는 45˚ 내외이다.

출토된 동사는 길이 11.5㎝, 폭 1.65㎝이다. 등에 형성된 능선이 매우 얕다.

정문경 2점의 크기는 대형이 직경 17.8㎝, 소형이 14.5㎝이다. 거울면(鏡面)은 대형은 납작한 평면이지만 소형은 약간 오목하다. 무늬면(背面)에는 동심원문과 집선문・대향삼각문・사격자문 등이 세밀하게 새겨졌고, 중앙에서 약간 위쪽으로 치우쳐 교형(橋形)의 고리 2개가 부착되었다. 두 점 모두 내구-중구-외구로 구성되었는데 문양구성은 대형이 소형에 비해 좀 더 세밀하다.

팔주령(八珠鈴)은 2점으로 조를 이루고 있다. 대곡리유적 출토 팔주령은 팔각판 끝에 둥근 방울이 각각 1개씩 달려 있는 형태이고, 후면에는 중앙에 단면이 반원형인 고리를 1개 부착하였다. 전체적인 형태와 방울에 새겨진 고사리 문양에서 전 상주 출토품과 가장 비슷하고, 팔각판 중앙부의 문양적인 요소에서는 전 논산 출토품과 유사하다.

쌍두령도 팔주령과 마찬가지로 2점이 조를 이루고 있다. 대곡리유적 출토 쌍두령은 길고 둥근 막대모양의 손잡이가 중앙부분이 약간 두텁고 양쪽으로 가면서 가늘어지는데 끝에는 방울이 1개씩 부착되어 있다. 손잡이 내부는 비워지게 만들었는데 내화토로 채워져 있다. 손잡이의 중앙부에는 장방형 구멍이 1개씩 뚫려 있는데 한 곳은 좌우에 방형 구멍이 1개씩 더 뚫려 있다. 방울은 장타원형의 구멍이 4곳에 뚫려 있고 그 속에는 청동으로 만든 방울알이 1개씩 들어 있다.

대곡리유적 적석목관묘의 축조연대는 출토유물을 통해서 볼 때 한국 청동기문화가 절정기에 달한 시점이며, 목관재에 대한 분석자료 등을 참고한다면 서기전 3세기 중반경으로 추정된다. 전남지역에는 이러한 문화상이 함평 초포리, 화순 백암리 유적 등으로 이어진다.

의의와 평가

화순대곡리유적 출토품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국보로 지정된 청동유물 중 출토지와 매장유구가 확인된 최초의 사례였다. 추가조사를 통해 매장주체부가 적석목관묘라고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또 출토된 목재를 통해 당시 목관에 굴피나무가 사용된 것을 확인하였다. 초기철기시대 동검이 출토된 무덤 중 매장주체부의 형태가 비교적 뚜렷하게 확인된 유적이다.

현재까지 초기철기시대 적석시설과 함께 통나무관의 물적증거가 확인된 유일한 유적이기도 하다. 또한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중요한 청동제 일괄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청동기제작 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초기철기시대 지배자의 출현, 위계화 등 당시 사회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화순 대곡리 유적』(국립광주박물관, 2013)
『화순 대곡리 유적』(전남대학교박물관, 2005)
집필자
이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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