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문집인 『후계집(後溪集)』 권6에 들어 있다.
「화왕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모란의 일종인 요황(姚黃)은 낙양출신으로 자태가 아름다워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은 은일(隱逸)로 벼슬을 하지 않던 매화와 대나무·국화를 불렀지만 국화만 오지 않았다. 왕은 매화를 촉군태수(蜀君太守)로 삼아 매화의 덕을 빌려 인재를 올바르게 뽑고, 대나무를 통평후(通平侯)로 삼아 간언(諫言)을 맡게 하였다. 모란의 또 다른 종류인 위자(魏紫)를 왕후로 삼았다. 작약(芍藥)을 광릉(廣陵)에서 찾아 재상으로 삼으니 정치가 매우 잘 이루어졌다.
왕이 나이가 들수록 사치가 심하여졌다. 해당화(海棠花)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불러 별궁에 두고 정사를 게을리하였다. 대나무가 간언을 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가을의 신인 욕수(蓐收)가 가을바람을 몰아 이르니, 모든 사물이 다 꺾이고 왕도 상교(商郊)에서 죽어 나라가 마침내 망하게 되었다. 작약은 왕과 함께 죽고, 대나무는 절개를 겨우 지켰으며, 매화는 대유령(大庾嶺)에 버려졌다. 오직 국화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는데 『시경(詩經)』에 명철(明哲)로 몸을 보호한다고 한 말이 국화에게 적용된다.
이어 태사공왈(太史公曰)로 시작되는 논평이 붙어 있다. 부귀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늘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국화의 절개가 군왕의 영화보다 낫다고 하고 있다.
「화왕전」은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에서 마련된 꽃을 의인화하여 정치의 득실을 풍자한 유형을 잇고 있다. 조금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임제(林悌)의 「화사(花史)」, 김수항(金壽恒)의 「화왕전(花王傳)」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