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부옹(傅翁), 호는 초곡(草谷). 아버지는 선공감정(繕工監正) 황진손(黃震孫)이다.
생원으로 1477년(성종 8) 춘장 문과(春場文科)에 급제하고, 1482년 홍문관정자가 되어 문신들의 춘설금체고시제술(春雪禁體古詩製述)에서 장원하였다. 1489년 헌납으로 정시(庭試)의 참시관(參試官)을 역임하고, 이듬해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병으로 곧 사임하였다.
1493년 장령을 거쳐 지평이 되어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자를 양전경차관(量田敬差官)에 뽑는 등 인사에 신중을 기하지 않은 이조낭관의 추국을 주장하였다. 1494년 홍문관응교가 되었다.
마침 회령의 성중에 대화재사건이 일어나 그 피해가 극심하매 진상을 조사하기 위한 경차관으로 현지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가던 중 병이 심하여 시종인들이 서울로 돌아갈 것을 청하였으나 듣지 않고 가다가 북청의 거산역(居山驛)에 이르러 죽었다. 성종은 공무수행 중 죽은 그를 애석하게 여겨 쌀·종이·관곽(棺槨)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