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좌

  • 예술·체육
  • 단체
  • 일제강점기
1930년대에 활약하였던 상업주의 극단.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민영 (단국대학교, 연극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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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30년대에 활약하였던 상업주의 극단.

내용

1933년 12월에 성광현(成光顯)을 대표로 연출부에 성철(成澈), 음악부에 지방렬(池芳烈)·문호월(文湖月) 등, 문예부에 박영호(朴英鎬), 미술부에 원우전(元雨田), 연기부에 성광현·서일성(徐一星)·박창환(朴昌煥)·박고송(朴孤松)·석와불(石臥佛)·전경희(全景希) 등 남자배우 17명과 최선(崔仙)·나품심(羅品心) 등 여자배우 9명으로 도합 40여명인 대극단으로 구성되었다.

1940년경부터는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의 구성원이었던 신좌현(申佐峴) 등과 극작가 이광래(李光來)가 가담하였고, 또한 연출가 박춘명(朴春明)·신고송(申鼓頌), 극작가 김태진(金兌鎭) 등이 새로 가담하였다.

이 극단은 <가시는 아버지>(박고송 작)와 <비극폐업>(박영호 작)으로 창립공연을 가졌고, 박영호·임서방(任曙昉)·임선규(林仙圭) 등의 비극작품과 희극을 적절히 안배하며 공연활동을 벌였고 막간도 많이 활용하였다.

1945년 광복 때까지 중앙과 지방을 순회하면서 20여년 가까이 수십 편의 신파극을 공연하였으며,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 극단은 1930년대에 상업주의 연극이 전성기를 누릴 무렵의 대표적 극단 중의 하나로서, 저급한 대중을 상대로 왕성한 공연활동을 벌였으며, 주로 역사극·시대극·애정극을 공연하였다.

참고문헌

  • - 『한국신극사연구』(이두현, 서울대학교출판부, 1966)

  • - 『한국연극사』 제이기(第二期)(서항석, 예술원,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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