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좌 ()

목차
연극
단체
1930년대에 활약하였던 상업주의 극단.
목차
정의
1930년대에 활약하였던 상업주의 극단.
내용

1933년 12월에 성광현(成光顯)을 대표로 연출부에 성철(成澈), 음악부에 지방렬(池芳烈)·문호월(文湖月) 등, 문예부에 박영호(朴英鎬), 미술부에 원우전(元雨田), 연기부에 성광현·서일성(徐一星)·박창환(朴昌煥)·박고송(朴孤松)·석와불(石臥佛)·전경희(全景希) 등 남자배우 17명과 최선(崔仙)·나품심(羅品心) 등 여자배우 9명으로 도합 40여명인 대극단으로 구성되었다.

1940년경부터는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의 구성원이었던 신좌현(申佐峴) 등과 극작가 이광래(李光來)가 가담하였고, 또한 연출가 박춘명(朴春明)·신고송(申鼓頌), 극작가 김태진(金兌鎭) 등이 새로 가담하였다.

이 극단은 <가시는 아버지>(박고송 작)와 <비극폐업>(박영호 작)으로 창립공연을 가졌고, 박영호·임서방(任曙昉)·임선규(林仙圭) 등의 비극작품과 희극을 적절히 안배하며 공연활동을 벌였고 막간도 많이 활용하였다.

1945년 광복 때까지 중앙과 지방을 순회하면서 20여년 가까이 수십 편의 신파극을 공연하였으며,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 극단은 1930년대에 상업주의 연극이 전성기를 누릴 무렵의 대표적 극단 중의 하나로서, 저급한 대중을 상대로 왕성한 공연활동을 벌였으며, 주로 역사극·시대극·애정극을 공연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극사연구』(이두현, 서울대학교출판부, 1966)
『한국연극사』 제이기(第二期)(서항석, 예술원, 1977)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