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황룡사구층목탑지에는 7칸 4면을 구성하였던 1면에 여덟 개씩의 주초석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었고, 중심초석 위에는 거대한 석괴(石塊)가 얹혀 있었다. 이 돌에 걸쳐서 농가가 있었으나 1964년 철거됨에 따라 심초석(心礎石)이 그 위의 거석과 함께 노출되어 거석 밑에 장치되었던 사리장엄구가 교란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2년이 지난 뒤에야 수습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장되었다.
이 일련의 장엄구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금동판 3매의 표피에 가득히 각자(刻字)된 탑명(塔銘)으로서, 이에 의하여 신라 경문왕 12년(872)에 중수된 사실도 알 수 있다. 사리공(舍利孔)에 안치하였던 가로 29.8㎝, 세로 24.5㎝의 금동외함(金銅外函) 4매에는 각 면에 신장입상(神將立像) 2구(軀)씩이 선각되었고, 이 외함과 연결되는 얇은 동판으로 사리공 전체를 싸다시피 덮고 있다.
이 속의 금동내함(金銅內函)은 앞에 든 3매의 명문판(33.5×22.5㎝)과 함께, 두 짝으로 된 문비(門扉, 각각 가로 11.8㎝, 세로 22.5㎝)와 아울러 형성되어 있다. 이 문비 내외에는 신장상과 인왕상(仁王像)이 외함보다 더욱 능숙한 솜씨로 선각되었고 자물쇠 구실을 하는 금구(金具)가 중앙에 붙어 있다.
은제사리탑은 대좌와 옥개(屋蓋)만 남았으나 보존상태는 좋지 않으며, 금동8각사리탑(탑신높이 8.5㎝)은 표면에 연화문이 선각되었으나 각선이 분명하지 않다. 이 밖에도 높이 6.2㎝의 청동방함(靑銅方函), 높이 5㎝의 은제원합(銀製圓盒), 높이 10.8㎝의 금합, 지름 2.5㎝의 은제원반 등이 발견되었다.
1978년 황룡사지발굴조사의 일환으로 탑지심초석을 들어냈을 때, 그 밑에서 백자호(白磁壺)·동경(銅鏡)·금동제태환수식(金銅製太環垂飾)·수정옥(水晶玉)·청동완(靑銅椀)·청동합 등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