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헌지(獻之), 호는 상정(橡亭). 아버지는 병조참판에 증직된 황구수(黃龜壽)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1486년(성종 17) 약관의 나이로 생진과에 주1, 1492년 별시문과에 갑과로 주2 저작으로 기용되었다. 이어 전적 · 감찰 등을 거쳐, 1497년(연산군 3) 의정부사록 · 정언 · 교리 등을 지냈다.
연산군의 난정이 심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512년(중종 7) 의정부사인으로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후학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1521년 곤양현감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뒤에 예주현감 · 동부승지에 다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24년 경주부윤에 임명되어 부임하였다가 1525년에 고향에 돌아와서 다음 해 죽었다.
뒤에 사림의 추천으로 경락서원(景洛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주3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