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리비 ()

목차
관련 정보
양산 효자리비
양산 효자리비
조선시대사
유적
국가유산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고려시대 관리 박창과 이공미의 효행 관련 정려비.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양산 효자리비(孝子里碑)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76년 12월 20일 지정)
소재지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로 78 (북정동, 양산시립박물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고려시대 관리 박창과 이공미의 효행 관련 정려비.
내용

197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박창의 비석은 방형으로 2㎝ 정도의 음각선을 둘러 장식하였다. 측면에 ‘효자리(孝子里)’라고 큰 글씨로 음각하고, 그 밑에 박창의 효행을 기록하였으나 마멸이 심해 판독하기 어렵다.

박창에 대한 내용은 『양산군읍지』(『경상도읍지』, 1832년 경) 인물조에 수록되어 있다. “박창은 고려인으로서 부친상을 당하여 깊은 골짜기에 초막을 짓고 밤낮으로 애통해 하였다. 왜적 세 명이 칼을 들고 왔다가 사연을 물으니 막힘없이 대답하였다. 이에 감동하여 놓아 주었는데 그 효성을 기리기 위해 정문과 비석을 세웠다.(朴暢高麗人 遭其父喪 廬于深谷 日夜哀痛 倭賊三人 持刀來問 暢答以實 敵感而釋之 旌門立碑)”는 내용이다.

이공미의 비는 박창의 비와는 달리 비 모서리 부분을 5㎝ 정도 깎아서 모를 죽인 형태이다. 측면에 ‘효자지리(孝子之里)’라고 2단으로 글씨를 새겼다. 박창의 비처럼 작은 글씨로 아래 부분에 음각하였으나 판독하기 어렵다.

이공미에 대한 내용도 『양산군읍지』 인물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공미는 고려인으로서 모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무덤을 지켰으므로 효성을 기리기 위해 정문을 세우고 요역을 면제해 주었다.(李公美高麗人 守母墓三年 旌門復戶)”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
『경남문화재대관』도지정편(경상남도, 1995)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