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양지(興陽誌)』는 전라도 흥양현(興陽縣)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 일대]에서 편찬하였다. 흥양현 읍성(興陽縣 邑城)은 고흥반도의 중앙부에 있다. 이곳은 남부 해안으로 가는 길목이며, 동서로는 바다와 가까이 있어 해상교통에 유리한 장소인 동시에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1책 14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0.3㎝, 가로 19.7㎝이다. 표제는 ‘흥양지’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편찬 시기를 밝혀 놓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읍지의 내용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인물과 송심(宋諶) 항목에 기록한 ‘상 정축(上 丁丑)’은 영조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본 읍지는 영조 연간의 지리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편찬하였을 것이다. 두 번째는 호구의 작성 기준이 1759년(영조 35) 기묘장적(己卯帳籍)으로, 이때의 정보를 바탕으로 읍지를 편찬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더불어 18세기 중반 중앙정부 중심으로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항목 구성이 비슷하다는 점 또한 편찬 시기를 추정할 근거가 된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흥양지』는 1791년(정조 15)경의 읍지상송령에 따라 1759년경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18세기 후반에 베껴 쓴 것이다.
『신증흥양지(新增興陽誌)』와 달리 읍지 첫 부분에 지도를 수록하지 않았다. 수록 항목은, 주변 주요 지역까지의 거리 정보를 기재한 ‘흥양현순천진관(興陽縣順天鎭管)’을 시작으로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봉수(烽燧), 누정(樓亭), 사찰, 고적(古蹟), 진보(鎭堡), 인물,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순으로 구성하였다. 특히 방리 항목에서 14개의 면(面)과 여러 섬의 편호(編戶) 수를 정리해 놓은 점이 눈에 띈다.
비슷한 시기에 편찬된 『신증흥양지』에 비해 소략하지만, 바다와 인접한 군사 주요 지역으로서 필요한 항목을 중심으로 기록하였다. 18세기 중반 흥양현의 상황을 보여 주는 역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誌)』와 함께 이 지역의 변화상을 담고 중요한 자료이다.